2025. 5. 22

일기 2025. 5. 22. 09:06

한 달 새에 나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울 지경까지 화를 두 번이나 냈다. 한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된 것일까.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고, 팔다리 근육이 힘이 들어갔다. 나를 건드리면 백배로 복수하겠어! 이런 임전태세를 내 몸이 만들었다. 

시작은 그를 바라보는 내 눈빛 때문이었다. 그가 공동체의 규칙을 어겼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를 제지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서 말했다.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막막한 내 감정이 눈으로 드러났을 터였다. 그는 나의 사려깊지 못함을 역으로 지적했고, 환대하지 않는 나의 태도가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튿날 나는 그에게 사과했다. 그 이후 그에게 건네는 언행을 조심했다. 불편했다. 친구인데.

두번째 사건으로 첫번째 사건이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가 잘 모르는 여러 사람앞에서 전혀 삼가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독한 말로 반복해 드러냈다.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상태가 계속되는게 그에게도, 사람들에게도 득이 되지 않겠다 싶어 다시 그를 제지하려고 했다. 정당하다는 확신으로.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네가 무슨말할지 알아. 듣고 싶지 않아." 답이 돌아왔다. 나는 격분했고 그 자리를 피했다. 뭔 일을 낼 것 같은 감정이 폭발해서. 잠깐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로 돌아왔고, 그는 이후 30분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자리에 있다가 갔다.

일주일 넘게 그와 나의 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일단 그를 만나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해야 오해가 생기거나 감정적으로 치닫지 않을 것 같았다. 전화했다. 그는 평온했고 냉랭했다. 나를 따로 만날 필요를 못느낀다고 했다. 자신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공식적인)회의와 규정에 따라 조치하라고 말했다. 그런 대화를 나누다 또 격분했다. 심장이 떨려서 더 말을 못하겠더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나는 원한다. 대화의 범위에 제한이 없으면 좋겠다. 내가 옹졸한 태도를 가질 수도, 그가 편견에 빠져있을 수도 있고 고집스러운 면모가 꼴보기싫은 순간도 올테지만, 인생길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라는 믿음이 있어 불편하지는 않다. 사람은 쉬 바뀌지 않는 존재라고 나도 그처럼 생각한다. 내가 그에게 바뀔 것을 강제하려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는 듣고싶어하지 않는다.

나는, 대화가 필요없다는 이와 친구로 지내기 어렵다는 걸 어제 깨달았다. 내가 아주 좋은 사람이 아니고 그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와 더이상 친구 안하기로 결심했다.

좀더 생각은 해봐야겠지. 내 격분의 원인이 나를 인정받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인지. 두루 사람좋다고 칭찬받는데 익숙한 나라서, 전혀 다른 평가를 흉기처럼 내게 들이댄 것을 참지 못했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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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비크는 노르웨이 피오르에 사는 페리 운전사로 평생을 살았다. 태어나고 자란 옛 집에서 아내 마르타와 평생을 살았고, 두 딸을 키웠다. 공부를 곧잘 한 영특한 소년이었지만 열다섯살부터 가업이었던 페리 운전 일을 이어 받았다. 

페리 운전사는 21세기 대도시로 치자면 버스와 택시의 중간쯤 되려나? 고향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평생을 지켜온 그라서 그의 페리에 탑승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웃들이었으며, 그는 그들의 인생사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평생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썼다. 득실을 따지지 않고 이웃들의 일을 돕는데 정성을 다했다.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고, 예정일보다 빠르게 출산을 하게 된 산모의 아이를 받았고, 손가락이 잘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이웃을 찾아 응급처치를 해주고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여자를 만나면 제대로 말을 못하는 동네 40대 노총각 선 자리에 따라가 코치를 해 준 끝에 그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도록 도움을 주었고, 마을 산파로 독립적이고 당당한 삶을 죽을 때까지 살기를 원했던 여자사람친구의 마지막을 지켜주었다.

무엇보다 마르타. 그의 평생의 사랑이자 등대같았던 존재였던 아내가 이른 나이에 뇌졸증으로 죽음을 맞은 후, 그는 삶의 에너지를 더이상 채우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가 페리로 연결했던 피오르 사이에는 현수교가 놓여, 일상에 보람을 채워줄 일조차 이제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상태.

그런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가 소설의 끝과 시작이다. 동트기 전 집을 나선 닐스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페리를 출항시켜 하루 동안 피오르 사이를 항해한다. 그러면서 수십년을 성실하게 써내려간 항해일지를 다시 읽어보고 잊고 있었던 옛 추억들을 하나씩 둘씩 떠올리며 담담하게 평생의 삶을 되돌아본다.

마르타에 대한 순정한 사랑, 하루도 빠짐없이 항해일지를 썼다는 대목에서는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이 떠올라 배시시 웃었다. 그런 성실함, 이웃에 대한 관심과 댓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태도는 나 역시 닮고 싶다.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당당함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청소부 히라야마를 생각나게 한다. 평범하지만 퍽 존경받을만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닐스의 삶은 대체로 평탄했을 법하고 실수 따위는 잘 하지 않았을 것 같았지만 어디 인생이 그렇게만 흘러갈 수 있으랴. 그도 크고 작은 파고를 맞닥뜨려야 했다. 마르타가 잠시 외도를 한일도 있었고, 전세계를 강타한 반미-반전운동의 폭풍이 그의 마을과 가정을 피해가지 않기도 했다. 다 자란 딸들에 대한 사랑이야 변함없으나 그 아이들은 내 맘 같지 않고. 평생 아픈 손가락이었던 막내 동생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현장을 제 눈으로 목격하기도 했다.

북유럽 작가의 소설이 궁금해서 손에 들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커다란 울림을 준 작품을 만났다.

에우드 하베르도 이곳의 자연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다며 찬사를 늘어놓았다. 닐스는 이곳 사람들은 '자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가리킬 수 있고 그 속에서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것은 숲과 바위와 산과 강과 피오르지, '자연'이 아니라고 했다. (196쪽)
닐스는 이것이 바로 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고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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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동 주점에서 신년회 겸 회의로 얼굴본게 얼마 전 일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1월이었단다.

나는 공사에 바빴을테고 흥섭은 연초에 몰린 목공수업 체계 짜고 출장다니느라 여념이 없었겠다.

느리고 성실하게 자리를 지키는 흥섭에 빚을 많이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종현이 이사들의 참여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제안했는데

나는 나한테도 뭔가 불똥이 튀면 어떻게 거절을 해야하나

나는 회의 때 머릿수 채우는 것 이상의 역할은 현재로서는 못한다고 변명을 해야하나

올해까진 묵묵히 따르고 내년에 빠지겠다고 말을 해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여기저기 빠지고 내가 열심을 부리고 있는 일은 뭐지? 음악에 내가 그렇게 열정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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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4. 30 한상욱

일기 2025. 5. 2. 08:45

회사가 한가할 때 한번 다녀와야지 생각하던 것을 실행에 옮겼다.

오전에 강화이주노동자 공동체를 준비하는 한상욱 형의 새 사무실을 보고

오후에 김은숙 선배 집의 몇가지 문제를 확인 또는 해결해드리러 강화에 다녀왔다.

형 집으로 먼저 가서 사무실에서 쓸 집기 몇가지를 내 차로 날라드렸다.

가급적 돈들여 꾸미는 걸 배제하고 사무실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사가 뭐가 있을지 같이 확인했다.

조명기구 (홀 2개소/사무실방 1개) 교체, 현판 제작설치 정도 하기로 했다.

밖으로 드러내 목소리 높이는 일 말고, 조용하고 소박하게/그러나 의미있게 노년의 삶을 살려는 형이 참 좋다. 멋있다. 

점심먹고 송해면 은숙 누나네로 함께 갔다. 정원 수도꼭지에 호스로 연결된 분무기가 여기저기 새길래 형과 내가 같이 손을 보았다.

밸브하나가 부러진 수전은 내가 갈아드렸고, 연결부위마다 테프론을 감아보는 등 상욱이 형은 분무기를 살려보려고 애썼다.

결론은 포기. 새것으로 교체.

나는 인천에 술약속이 있어 대강 마무리를 하고 서둘러 출발하고싶어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전전긍긍했는데

예순 다섯 먹은 형은 아이처럼 마당에 털퍼덕 주저앉아서 분무기 고치는데만 집중하시더라.

저런 계산하지 않는 순수함이 언제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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