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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20 이영숙, 2024-03-16
  2. 2024.03.20 김민, 2024-02-15
  3. 2024.03.15 사람을 목격한 사람
  4. 2024.03.12 시간과 물에 대하여

이영숙, 2024-03-16

사람일지 2024. 3. 20. 17:27

철뚱 책읽기모임 오프모임을 가졌다. 다섯이 모였다. 셋이 안와서 조금 서운했지만 소수정예 주당의 술판이라 집중되는 맛이 있었다. 

극단 '올리브와 찐콩' 대표를 맡고 있는 영숙이는 한결같다. 그를 처음만났을 때 연극에 열정을 불태우는 대학생이었고, 지금은 '소멸해가는 쟝르' 연극의 끝을 놓지 못하는 멋진 예술가다.

그가 요새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 얘기를 한참 듣다가 내 얘기를 조금 했다. 기타모임에 대해서. 예술의 힘에 대해서. 서툴러도 함께 눈빛을 주고받으며 앙상블을 만들어 내는 순간의 쾌락은 술자리의 그것에 못지 않다는 얘기도. 예술분야에서의 진보운동 (이른바 문예운동)은 기본계급 운동의 지원부대라고만 생각했던 철모르던 시절의 단견에 대해서도. 

눈이 동그래지고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내 얘기를 들어주던 영숙은 끝내 내게 하이파이브를 청하더니만, 그날도 기어코 멋진 얘기를 해 오늘 이 일지를 쓰게 만들었다. 대략 이런 얘기.

"예술이 가진 힘을 누구나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협응하여 만들어 내는 조화에 우리 인생의 목적이 있지 않겠나. (정국이 네가 그걸 느꼈다니!) 나는 진보정당이 '무상의료, 무상급식' 구호를 외쳤듯 '무상예술'을 주장했으면 좋겠다. 가난한 집 자제도 소질이 있고 열정이 있다면 클래식 음악을 배우고 향유하는데 제한이 없어야 한다.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영숙의 이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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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2024-02-15

사람일지 2024. 3. 20. 17:15

김민은 국민학교, 중학교 동창이다.

국민학교 시절에 반이 달랐지만 친했다. 학교는 동암역, 우리집은 제물포역, 그는 주안역. 아침 저녁으로 전철에서 만났다. 통학생 특유의 공감대를 느꼈으리라. 그날 얘기해보니 전학생 특유의 공감대도 있었다. (나는 4학년, 그는 6학년에 전학왔다)

중학 시절엔 함께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멀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날 얘기해보니 그는 진혁이의 절친이었다. 진혁, 차승희, 김민, 조재정. 주안5동 패거리들이었더라.

우연히 연락이 닿아서 그를 2월 15일에서 만났다. 우리 동네 단골집 가매전에서 진혁과 함께 셋이.

87년 봄에 졸업하고 처음이니까 37년만이었다. 예전과 달라진게 별로 없는 전화 통화속 그의 목소리가 반갑고 따뜻해서 보지 않고 지냈던 긴 세월이 염려되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직업이 조금 걸렸지, 공무원.

강산이 세번도 더 바뀐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민이는, 좋았다. 말과 눈빛이 상냥했고 제 힘을 과시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지방 근무하는 아내를 둔 그는 아이 둘이 자라는 동안 양육을 주로 도맡았다고 한다. 아하, 살림하는 남자라서 저렇게 상냥했구나.

녀석의 손을 잡고 뺨을 한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 얼굴을 보고 네 말을 들으니 네가 잘 살았다는 걸 알겠다. 참 좋다'.

그는 내게 말했다. '세상에 친구 둘 꼽으라면 진혁이랑 너다. 반갑다'.

과찬도 자연스럽게 할 정도로 상냥한 녀석이어서 나온 표현이었겠지만. 좋은 자리가 선물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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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 저. 사계절. 2023년

 

2005-2006년 즈음 '민주노동당 장애인정책 담당보좌관'이 직업이었다. 결혼 전후로 한 휠체어 장애인 친구의 공부를 봐 준 경험을 한게 장애인의 삶에 대해 내가 이해하고 있는 전부인 상태에서 그냥 맡게 되었다. 할 일은 많고 일손은 모자라던 시절이어서다.

중앙당의 장애인 당사자/비장애인 정책연구원과 수시로 만나 식견을 넓혔고, 가리지 않고 장애인 단체 책임자들과 활동가들을 만났다. 성람재단,인화학교 등 당시 이슈가 되고 있던 장애인 생활시설을 찾아가 비리를 파헤치고 바로 잡으려 애도 썼다. 

당시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를 맡고 있던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 교장선생을 만났던 게 그 때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했더라도 아주 잘 하셨을분'이라는 동료의 평가가 틀리지 않았다. 원칙적이고 유능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그런데 대하기가 힘도 들었다. (진보)정치란 비타협적인 투쟁을 주된 수단으로 삼는 운동과는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조금 달라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제도를 한번에 확 바꿀 수는 없으니 차근차근, 한발짝씩 나아가야 하는거 아냐? 이동편의증진법이 통과된게 얼마전이고, 이제야 비로소 IL (자립생활)의 기초가 닦이고 있는 판인데, 여기에다가 또 투쟁을 덧붙인다고?

올해 법을 만들었으면 시행령은, 예산확보는 조금 텀을 두고 천천히 가도 되는게 아닌가. 왜 이렇게들 조급하신가 하는 마음이 솔직히 있었다. 나는 장애인 정책을 담당하여 보좌하지만, 함께 일하던 의원동지는 장애인 이슈말고도 보건복지위 소관인 온갖 주제에 더해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까지, 해야 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저분들은 왜 이렇게 배려심이 부족한거지, 응?

당사자들과 만남을 갖는 일도 비장애인 100프로의 사회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내가 적응하기에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내 속도로 튀어나가려는 몸과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고 상대의 속도에 발맞추는, 입장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요구되었다. 지금 이렇게 천천히 갈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고요! 하는 마음이 솔직히 있었다.

이 책을 읽고서 내가 고작 2년여 경험한 그 시간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들의 배려없음을 속으로 원망했던 내 위선의 실체를 보았다. 2000년대 중반, 장애인 자립생활지원제도가 시행된 것이 물론 첫 단추였지만, 그 후로도 수없이 많은 장애인들의 목숨을 건 문제제기와 희생, 헌신이 있었기에 그나마 오늘 여기만큼이라도 왔다는 걸 아프게 깨달았다. 그 옆자리, 뒷자리에 박경석, 홍은전 선생이 있었고. 그들의 삶에 오래 천착하며 함께 눈물흘리고 깃발을 들고 싸워왔던 내 동년배 고병권 선생이 이 책으로 그 싸움의 정당성을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말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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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지음/노승영 옮김/북하우스/2020년

아이슬란드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시간'과 '물'을 열쇳말로 풀어내는 접근이 참신하다는 평을 보고 집어들었다. 요즘 글쓰기의 트렌드인가 싶은데, 거시적인 주제를 지은이 개인의 이야기와 맞물려 서술한 점이 좋았다.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 사람답게 저자는 기후변화를 주로 빙하의 변화를 소재로 다루며 이야기하는데, 시종 과학자가 아닌 작가와 환경운동가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점이 더 설득력이 있더라.

과학자들은 주장의 근거를 나열하고 보수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보통이다. 저자는 지구평균 기온이 2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21세기 말이 우리 아이들이 할머니가 되기전에 찾아올텐데, 그들의 고통을 내 알바 아니라고 외면할 것인가 반복해서 지적하고 호소한다.

그리고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제시하는 여러가지 통계수치가 독자를 압박한다. 이런식으로.

"알루미늄 산업은 알루미늄 1톤을 생산할 때마다 평균 약 8톤의 CO2를 배출하는데, 다 하면 연간 약 5억 톤으로 전 세계 배출량의 2퍼센트에 육박한다. 전 세계 철강 생산량은 1990년 이래 10억 톤이 증가했다. 철강 1톤을 생산할 때마다 약 2톤의 CO2가 배출된다. 플라스틱 산업, 제지 산업, 패션 산업, 자동차 산업, 에너지 시장 전체, 건설 산업, 육류산업 등 모든 분야에서 최근 전세계 산출량이 증가했다. 대기 중 CO2의 50퍼센트는 1990년 이후의 배출로 인한 것이다. "(248쪽)

나의 이십대가 시작한 90년대는 한국인이 소비문화에 포획되기 시작한 출발점이다. 지구의 온도를 올려놓은 범인을 찾아보자면 그 시절부터 갖가지 편의상품을 사들이기 시작하고 알루미늄 캔 맥주를 들이켜온 나도 예외일 수 없다는 일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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