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에 돌아가신 화수동 박명순 할머니 1주기 추모 전시회가 지난 7월 18일 '창작공간 도르리'에서 열렸다. 만석동의 청년 재주꾼들이 그를 기리는 마음을 그림으로, 글로, 노래로 표현했다. 피 한방울 섞인 가족이 아니었지만 가족보다 더 가까운 식구로 지냈던 그이와 만석동 청년들의 지난 몇년간이 놀라웠다.
상범형의 글과 말을 오래전부터 좋아했고, 요샌 그의 연주와 노래도 좋다. 이십 몇 년만에 그가 쓴 글을 읽었다. 더 좋아졌다.
선감학원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지금은 매립으로 대부도와 한덩어리가 된 선감도에는 전두환정권 시절인 1980년대까지 '선감학원'이라는 청소년 부랑자 수용시설이 있었다. 부산 형제복지원의 청소년 버전인 셈이다. 일제 말기인 1940년대부터 약 40년간, 이곳에서는 5천명이 넘는 청소년과 아동이 끌려와 강제 노역을 당하고 수십 수백명이 목숨을 잃은 역사가 숨겨져있다. 최근에서야 그 참상이 세상에 알려졌고, 명민한 영숙이 이 사건을 접하고 2021년에 청소년극으로 작품화했다. 울산에서도 한번 공연을 했다하고 대학로에서 상연하기는 이번이 처음.
청소년극으로 형식을 잡아서 그랬을 것이다. 길이는 60분으로 길지 않았고 출연자도 딱 배우 2명 뿐이었다. 하지만 충격과 감동은 컸다. 무엇에 촛점을 맞추어 이 이야기를 연극으로 꾸몄을까 관심을 두고 봤다. 선감학원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끔찍한 사례를 다 담을 순 없었을텐데. 전형적인 국가폭력의 역사를 고발해준다면 족하지 않을까. 죄없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절대권력=원장에 맞선 두 주인공은 한번의 탈출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각자 다른 선택을 한다. 자신을 학대했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는 선오는 지옥섬을 탈출하는 것만이 살길이라 믿고 다시한번 도망친다. 반면 고아로 자라나 어차피 밖으로 나가봤자 거기도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태주는 몇 년만 더 버텨서 성인이 될때까지 견디기로 한다. 두 사람 중 누가 성공했을지, 혹은 살아남기는 했을지까지 극은 보여주지 않은채 막을 내린다.
청소년극이라기엔 수준이 너무 높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고통과 시련과 모순으로 가득찬 인생길을 살아가며 누구나 맞닥뜨리는 갈등의 순간에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연극은 관객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묻는다. 그 선택에는 당연히 삶을 대하는 태도가 포함되고, 각자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지옥섬 선감도의 사건은 삶의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단면을 보여주는 소재였고, 우리네 인생이란 이런 어려운 질문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하는데 연출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자리를 옮겨 가진 가진 술자리에서 들은 연출자 영숙의 말이 의외였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 중고생 정도 나이 청소년들이 던지는 질문이 굉장히 수준높았다"고 했다. 그렇구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다 자란 성인들만 하는 것이 아닌게 당연하지 않은가.
"돈이 안될게 뻔한 소재라는 걸 나도 알지. 하지만 객석 수 채우는데만 혈안이 되어서 말도 안되지만 돈만 되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세태에 쫓아 살긴 싫은 걸. 이 사건을 접하고서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영숙의 말이다. 얘는 스무살 처음 만났을때 부터 멋있었고, 세월이 오래 지나 다시 만났을때도 근사했는데, 여전히 청년으로 살고 있다. 존경스럽고 자랑스런 친구다.
뒤풀이는 이태원으로 옮겨서 했다. 희전 사촌누가가 최근에 개업한 재즈 라이브 바 "Au Passage Jimmy's Bar"에서. Jimmy는 누님의 이름이다. 무대에 오르다 프랑스에 가서 공부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연극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연출가로 살았다. 퇴직금을 몽땅 털어넣어 차린 바라고 한다. 그러니 자기 이름을 붙일만도 하지. 5시 반에가서 오래 앉아있었다. 8시부터는 재즈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보는 호사도 누렸다. 공연 분위기가 절정을 향해 달릴때 Jimmy와 그녀의 언니는 홀 가운데로 뛰쳐나와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다.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서는 우리에겐 "젊은 사람들이 너무 점잖빼는 거 안좋아. 다음엔 와서 춤춰~"하셨다. 이것 참, 대책 없이 멋지다.
자리가 끝나고 전철역방향으로 걸어나가는데 사람이 몹시 많이 몰리는 골목이 눈에 띄길래 물었더니 이태원 참사가 났던 바로 그자리란다. 3년전 나는 선감도를 통과해 차를 몰아 대부도 펜션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아이와 함께 보낸 더 없이 기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백수십명이 황망한 죽음을 맞은 그 자리를 밟고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오늘 살아갈 힘을 또 얻고 온다. 삶은 이렇게 부조리와 망각의 연쇄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