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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2.29 시와 산책, 한정원 1
  2. 2024.02.29 탈인간선언
  3. 2024.02.21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4. 2024.02.17 한글과 타자기-한글 기계화의 기술, 미학, 역사

행복하기 싫다는 내 말을 정확히는 '행복을 목표로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승진', '결혼','내 집 마련' 등과 동의어로 여기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행복은 그렇게 빤하고 획일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 한다. (30쪽)

"행복은 단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지 영혼의 상태가 아니다" 행복이 내가 가져야 하는 영혼의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토록 자주 절망한다.... 매 순간 '방향'을 선택한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 방향이 아니라, 앞에 펼쳐진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선한 길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따른다... 그러니 역시 행복이라는 낱말은 없어도 될 것 가타.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마주하면, 우리는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다. (35쪽)

나는 11월을 편애한다. 가을 앞에 붙은 '늦'이라는 말도, 앙상한 나무와 아예 모질지는 못한 바람도 아낀다... 숫자 11의 생김새를 골똘히 보면, 나무 두 그루 모양이다. 잎을 다 떨구고 빈 가지만으로 서 있는 만추의 나무... 늦가을은 진실로 깊은 가을이다. 그 깊이의 출발지가 넉넉한 그늘인 것은 알겠고,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두고 보는 것이다. (42쪽)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 내가 귀하게 여기는 한 구절이다. 노인을 경외하는 것은, 내가 힘겨워하는 내 앞의 남은 시간을 그는 다 살아냈기 때문이다. 늙음은 버젓하지 못한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한 결과일 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열차가 완전히 정지하기 전에 그러하듯, 흔들림 없이 잘 멈추기 위해서 늙어가는 사람은 서행하고 있다.... 반면 나에게는 지나야 할 풍경이 조금 더 남아 있다. 써야 할 마음도 조금 더 있다. 그것들이 서둘러 쓰일까 봐 혹은 슬픔에 다 쓰일까 봐 두려워, 노랑이처럼 인색하게 굴 때도 있다... 노인에게는 멈추는 힘이, 나에게는 나아가는 힘이 필요하다. (68쪽)

흐린 날에는 모든 것이 떨어진다. 새는 날개를 떨어뜨리고(낮게 날고), 구름은 빗방울을 떨어뜨리고, 사람은 기분을 떨어뜨린다. 흔히 그보다 조금 부드러운 단어인 '가라앉다'를 선택하지만 말이다. // 나는 흐린 날을 다정히 맞는 편이다. 침침한 빛, 자욱한 사물들, 묵직하게 흩어지는 향. 흐린 날에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잠잠히 드러낸다. 내 안의 언어와 비언어들조차 소란스럽지 않다. 그 세계가 몹시 안온하고 충만해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햇빛은 온기를 주는 동시에 대상을 퇴색시킨다. 지나친 빛 속에서는 노출과다 사진 속 피사체가 그러하듯, 내가 배경속에 희석되거나 본디와 다른 모습이 되고 만다. // 그러니 진심이나 맹세는 흐린 날에 건네져야 할 것 같다. 햇빛은 사랑스럽지만 구름과 비는 믿음직스럽다.   (136쪽)

걷다가 죽어가는 벌레 곁에 있어주고, 창을 내다보는 개에게 인사하고, 고양이의 코딱지를 파주며 탕진하는 시간이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 시간의 나는 진짜 '나'와 가장 일치한다. 또한 자연이나 스치는 타인과도 순간이나마 일치한다. 그 일치에 나의 희망이 있다. 부조리하고 적대적인 세계에서 그러한 겹침마저 없다면, 매 순간 훼손되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견딜까. /// 방 안에 있을 떄 세계는 내 이해를 넘어선다. 그러나 걸을 때 세계는 언덕 서너 개와 구름 한 점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 정말 그것 뿐이다. 언덕 서너 개와 구름 한 점. 그 안의 무한, 그리고 무. 나날이 성실한 산책자로 살아가지만, 나는 아직 언덕과 구름을 다 보지 못하고 있다. (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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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인간선언

독서일지 2024. 2. 29. 05:59

부제: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한겨레엔, 2023년

 

탈인간은 탈인간중심주의의 준말로, 말 그대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이때의 인간이란 대개 서양의, 근대의 , 산업사회의, 도시의, 중산층 이상의, 비장애인 백인 남성이라는 특징을 은연중에 전제한다. (중략) 탈인간은 이렇게 인간이란 개념에 스며들어 고착화된 관념들로부터 탈피하고자 한다. 

나는 생태중심주의라는 말이 형용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생태계에는 고정된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무한한 관계들이 얽혀 있을 뿐이다. 중심은 잠시 나타났다가 휘발하는, 임시적인 초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는 일은 또 다른 중심을 세우는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굳이 인간중심의 반대말을 꼽으라면 나는 차라리 '인간 매개'라고 하고 싶다.  (10~!2쪽)

내가 가장 먼저 소망하는 변화는 '낚시 예능'이라는, 약한 존재에게 가하는 폭력의 일상화 오락화를 공고히하는 방송물부터 사라지는 것이다. 고기나 살육 자체보다 바다와의 교감, 고요의 음미를 선호하며, 미늘 없는 낚싯ㅅ바늘을 사용해 잡자마자 놓아주는 낚시인이라면 이 정도 변화는 반기지 않을까. 정작 널리 방송을 타야 할 정보는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잡자마자 풀어주는 소위 가장 '무해하다고' 통용되는 낚시조차 어류의 보호용 점액층과 피부를 손상시켜 결국 죽음에 이르기 쉽게 만든다는 사실. (73쪽)

물 들어오면 노를 잠시 놓으라. 그리고 물길을 읽으라. 이 물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열심히 따라가면 나는 무엇에 기여하게 되는가. 다시 돌아오지 못해도 좋은가. (106쪽)

늙어간다는 건 뭘까. 그건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희망을 찾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혹은 앉아서 찾는 것이다. 희망을 나 아닌 남에게서 찾는 것이다. 아니 찾지도 않으면서 관전평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상일이 진심으로 걱정돼 무슨 행동이라도 하지 않고는 못 배겨 거리로 나가는 대신, 그렇게 나선 이들을 치기 어리거나 한심하게 여기는 것이다. (201쪽)

"나는 동료들, 좋은 사람들에게 힘을 얻는다. 작은 사회 변화라도 만들려고 애쓰는 사람은 찾아보면 늘 어딘가에 있다. 크고 작은 기후 관련 모임, 집회, 축제, 행진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후 문제를 진지하게 대하는 군중이 물리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얻는 힘은 적지 않다. 뜻 맞는 사람을 찾아다니며 절대 고립되지 않는게 가장 중요하다" (208쪽)

하지만 진짜 힘과 마음의 평정은 앉아서 이런 생각만 할땐 절대 오지 않더라고요. 이 사태의 해결책의 일부가 되어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하고 있지 않 이상. 그래서 이 시대는 모두가 활동가가 되기를 요구합니다. 기후 재난을 막기 위한 싸움도 처음엔 소수에서 시작하지만 모두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누구는 석탄발전소 반대 운동에, 누구는 정부가 행동을 하도록 압박하는 일에, 누구는 비행기 덜 타기 운동, 누구는 탈축산, 탈육식 운동에, 누구는 프라스틱 줄이기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금씩 자기 세계를 확장시켜 나아가면 서로 다른 운동들이 만나며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2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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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문학동네,2023

나는 왜 이런 이야기에 많이 끌리는 것일까.

제목처럼 선이 가느다란 등장인물이 나오는 이야기. 약한자거나 소멸을 앞두고 있는 자들. 자신의 불행의 원인이 그저 스스로의 게으름이나 불운 탓이라 체념하지 않고, 그 (사회적) 연원을 찾아내려 애쓰고 함께 연대할 손을 찾는데 열심인 사람들의 슬프지만, 희미한 희망의 빛이 사위지 않은 스토리.

나의 결핍을 안고서 그것을 너무 미워하지도, 너무 가여워하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슬프면 슬프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 나를 계속 지켜보는 일. 나는 지금 그런 일을 하는 중인 것 같다. (책 날개)

맞아,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공부는 대학원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는 거,희원씨도 알죠." (37쪽)

친구 E가 떠올랐어.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44쪽)

<몫>에서.

윤금이 사건 (1992년),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 (우조교 사건, 1993년), 고대생 이대축제 난입사건 (1996년).

내 시선 또한 용욱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겠다. 부끄러웠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115쪽)
소리가 아이답지 않게 아무것도 조르지 않고 바라지 않는다고 그녀가 자랑하자 그는 놀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소리에게 물었다. 소리는 뭘 먹고 싶어? 소리는 뭘 하고 싶어? 소리가 아무거나 괜찮다고 대답하면 아니, 소리가 진짜 먹고 싶은 거, 라며 다시 물었다. 아무거나는 답이 아니야, 소리야. 그는 그렇게 말했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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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호 지음, 역사비평사, 2023

이런 책 참 좋다. 내 동년배가 집필한 터라 아주 많은 것들이 공감된다. 과학사 연구자/교수라는 본업을 수행하는 와중에 20년 가까이 한 주제를 파느라 꾸준히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온 수고가 물씬 풍겨난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한데 유익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다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자극까지 준다.

20대 후반에 공병석이라는 친구와 함께 한 적이 있어서 그런가, 이 책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 공병우가 낯설지 않았다. PC통신 1세대라면 한글이라는 언어체계를 컴퓨터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완성형/조합형 논쟁)에 많이 관심을 가졌던 세대일 것이고, 나도 그 축에 속하니 그 이름을 접해보지 않았을리 없겠지.

그 시절에 만난 현철은 세벌식 자판을 써서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도 그런지. 세벌식이 한글 창제 원리 (초성/중성/종성)에 입각한 과학적인 글자판인데다가 타자 속도도 두벌씩보다 훨씬 빠른 효율적인 자판이란 건데, 굳이 그걸 새로 배울 수고까지 들이고 싶지 않았다.

군 시절, 인사행정병으로 몇 달 보직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썼던 애플리케이션은 '보석글'이었다. 폰트는 딱 하나 명조체, 글자크기는 기본 사이즈 말고 세가지가 더 제공되었다. 가로 200프로 확대, 세로 200프로 확대, 둘다 확대. 심지어 직관적이지도 않았지. 내가 출력하려는 결과물과 화면에 내가 타이핑하는 모양이 늘 일치하지 않았다.그 어설픈 앱을 가지고 몇달 사이 내 타이핑 속도는 200타에서 500타까지 늘어났다. 그날치 일감을 소화해야만 퇴근이 가능했으니. 그 시절에 알았다. 아래아 한글이 얼마나 엄청난 소프트웨어인지. 

이 책은 이 모든 이야기들의 역사와 발전과정, 사회적의미를 다 포괄하고 있다.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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