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소련을 비롯한 현실사회주의권의 전면적인 붕괴와 자본주의적 개혁개방을 내세운 중국의 정경분리적 노선 수정 등 세계사적 격변은 20세기 초중반의 낡은 혁명이론에 젖줄을 대고 있던 변혁운동권에 1987년 대통령 선거 패배와는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1980년대 주류 운동 세력은 모든 것을 청산하고 일개 대중의 일원으로 자기를 해소해버린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략 네 가지 행로를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여전히 1980년대의 구좌파적 전망을 유지하며 노동자계급의 곁을 지켜나가는 길이었고 (=>사노맹, 전국연합), 둘째는 새롭게 열린 제도정치의 장에서 자유주의 정치세력, 혹은 의회주의 좌파의 일원으로 정착하는 길이었으며 (=>임종석, 심재철), 셋째는 혁명적 전망이나 당파성을 포기했다는 점에서는 제도정치권의 행로와 마찬가지지만 1990년대 이후 새롭게 열린 시민운동이라는 공개영역에 자리를 잡는 길이었고 (=>최열, 김기식), 마지막 길은 학계나 문화계로 방향을 잡아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어떤 암중모색을 펼쳐나가는 길이었다. (=>이진경, 김명인) / 하지만 어떤 길을 택하든, 직선제 개헌 성취와 1990년대의 경제적 호황으로 '운동권'에 등을 돌려버린 대중의 동향과 자기 자신들 내부의 청산주의 혹은 개량주의 ,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스스로 기득권층의 길을 가도록 만드는 파괴적인 시대의 흐름 앞에서, 서서히 1980년대의 혁명적 비전에서 멀어져가기는 매일반이었다. (33쪽)
대학 초년 시절의 철학 공부는 존재론과 인식론, 윤리학에 대한 눈을 뜨게 해, 매우 소박한 유아론에 빠져 있던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을 늘 '세계 내의 존재'로, 전체 속의 부분으로, 타자와의 관계들 속의 한 주체-개체로 인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그로 인해 나는 멀거나 가깝거나 나를 둘러싼 모든 문제들을 언제나 평면적이거나 원근법적으로 사유하는 대신 입체적으로 사유하느라 애를 쓰는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배후의 맥락과 인과적 과정을 먼저 생각한다. 어떤 경직된 도그마나 당위도 끝없이 의심하지만 절대로 불가지론에는 빠지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들은 변화하되 그냥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된 것들의 상호 갈등과 투쟁과 상호 침투를 통해 변화하는 것이며,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은 내가 이 갈등과 투쟁에서 벗어나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나는 이 공부들에서 얻은 인식으로 나를 둘러싼 세계를 '좌파적 관점'혹은 '진보적 관점'에서 구성했던 것이고, 그렇게 구성된 세계와 평생을 씨름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세계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가지성이 곧 무의미와 무기력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나는 이런 공부들을 통해서 변화와 진보가 곧 지고선은 아닐지라도 끝없이 자기 존재의 위상과 의미를 탐색하고 '지금 이 상태'를 넘어서고자 하는 낭만적 충동이 없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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