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비크는 노르웨이 피오르에 사는 페리 운전사로 평생을 살았다. 태어나고 자란 옛 집에서 아내 마르타와 평생을 살았고, 두 딸을 키웠다. 공부를 곧잘 한 영특한 소년이었지만 열다섯살부터 가업이었던 페리 운전 일을 이어 받았다. 

페리 운전사는 21세기 대도시로 치자면 버스와 택시의 중간쯤 되려나? 고향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평생을 지켜온 그라서 그의 페리에 탑승하는 사람들은 대개 이웃들이었으며, 그는 그들의 인생사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평생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썼다. 득실을 따지지 않고 이웃들의 일을 돕는데 정성을 다했다.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고, 예정일보다 빠르게 출산을 하게 된 산모의 아이를 받았고, 손가락이 잘려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이웃을 찾아 응급처치를 해주고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여자를 만나면 제대로 말을 못하는 동네 40대 노총각 선 자리에 따라가 코치를 해 준 끝에 그가 행복한 가정을 꾸리도록 도움을 주었고, 마을 산파로 독립적이고 당당한 삶을 죽을 때까지 살기를 원했던 여자사람친구의 마지막을 지켜주었다.

무엇보다 마르타. 그의 평생의 사랑이자 등대같았던 존재였던 아내가 이른 나이에 뇌졸증으로 죽음을 맞은 후, 그는 삶의 에너지를 더이상 채우지 못하고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가 페리로 연결했던 피오르 사이에는 현수교가 놓여, 일상에 보람을 채워줄 일조차 이제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상태.

그런 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가 소설의 끝과 시작이다. 동트기 전 집을 나선 닐스는 그의 분신과도 같은 페리를 출항시켜 하루 동안 피오르 사이를 항해한다. 그러면서 수십년을 성실하게 써내려간 항해일지를 다시 읽어보고 잊고 있었던 옛 추억들을 하나씩 둘씩 떠올리며 담담하게 평생의 삶을 되돌아본다.

마르타에 대한 순정한 사랑, 하루도 빠짐없이 항해일지를 썼다는 대목에서는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이 떠올라 배시시 웃었다. 그런 성실함, 이웃에 대한 관심과 댓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태도는 나 역시 닮고 싶다.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당당함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청소부 히라야마를 생각나게 한다. 평범하지만 퍽 존경받을만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닐스의 삶은 대체로 평탄했을 법하고 실수 따위는 잘 하지 않았을 것 같았지만 어디 인생이 그렇게만 흘러갈 수 있으랴. 그도 크고 작은 파고를 맞닥뜨려야 했다. 마르타가 잠시 외도를 한일도 있었고, 전세계를 강타한 반미-반전운동의 폭풍이 그의 마을과 가정을 피해가지 않기도 했다. 다 자란 딸들에 대한 사랑이야 변함없으나 그 아이들은 내 맘 같지 않고. 평생 아픈 손가락이었던 막내 동생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현장을 제 눈으로 목격하기도 했다.

북유럽 작가의 소설이 궁금해서 손에 들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커다란 울림을 준 작품을 만났다.

에우드 하베르도 이곳의 자연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다며 찬사를 늘어놓았다. 닐스는 이곳 사람들은 '자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가리킬 수 있고 그 속에서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것은 숲과 바위와 산과 강과 피오르지, '자연'이 아니라고 했다. (196쪽)
닐스는 이것이 바로 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고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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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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