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통영 시절 (1953~1955?)이 화양연화였다. 동료 예술가들의 후의와 환대에 힘입어 그는 이시절 소 시리즈와 통영 바다를 담은 풍경화 등 수많은 작품을 그려냈다.

이중섭=소, 로 바로 연상하는 것 외에는 아는 것도 흥미도 없던 내가 이중섭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서귀포에 살던 때다. 사무실에서 걸어서 10분거리면 이중섭 미술관이 있었다. 그가 서귀포에 체류하던 시절에 살던 초가가 보존되어 있고, 그가 그 시절 남겼던 은지화 여러점이 상설 전시되는 곳이다. '섶섬과 문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따스한 남풍이 한겨울 수선화를 피워내는 이 아름다운 남국, 그는 팔자좋은 남자였나'.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수많은 역사소설을 써낸 김탁환이 이번에는 이중섭의 화양연화를 생생하게 되살려 내었다. 서귀포 시절 이중섭이 그린 은지화 속의 아이들 그림은 처절한 가난과 그리움의 산물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늘 보고싶은 두 아들은 현해탄 건너 일본에 있고, 캔버스는 커녕 종이 살 돈조차 없어 담배갑 속지-은지화-에라도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으니.

통영은 자연경관만 빼어난 곳이 아니라 그 땅이 낸 인물도 짱짱한 곳이었더라. 한국전쟁과 피난시절이라는 특수가 있기는 했으나 전후 통영은 한국 최고의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흐름을 창조하려 무진 애를 쓰던 현장이었다. 소설에는 김춘수와 유치환, 최순우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들과의 교유가 가난하고 고독한 천재 이중섭의 영혼을 위무했을 터다.

책은 통영시절 그의 주요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무엇을 담은 것인지를 현미경을 들이대듯 찬찬히 꺼내 보여주는데, 내 눈에 크게 들어온 것은 미술작품의 감동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김탁환의 능력과 재주였다. 

책을 읽는 내내, 책 만큼 미술을 즐기고 늘 가까이 두며 사는 친구가 생각났다. 그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었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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