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찬와이

독서일지 2025. 9. 23. 09:39
그건 꿈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과 함께 그녀가 직접 경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땀과 눈물과 피 모두 진실이었다. 그런 친밀감과 서로를 향한 격려와 의지도 확실하게 존재했다. 다툼과 오해, 심지어 최후의 상심과 슬픔, 서로에 대한 적대감까지도 없었던 일로 꾸밀 수 없었다. ...... 내가 말했다. 오늘은 무척 괴로울 거예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서 시간이 빨리 흘러가 무관해지기를 간절히 원하겠지요. 하지만 언젠가는 별로 괴롭지 않게 되어서 이게 대체 무엇이었는지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모든 경험이 물이나 흙처럼 미래를 심을 수 있는 유기체로 바뀌고, 그걸 통해 원래는 없던 것들을 싹틔울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예팡 씨의 선택이 기반이 되어야 해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예팡씨의 경험이 꿈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모든 일을 찬란한 불꽃이나 흐릿한 꿈으로 대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동안 겪은 일들을 얕잡아 보고 과거를 끊어 내려 하겠지요. 혹은 실망과 좌절과 고통 등 일어났던 모든 일을 생명속에 녹여 낼 수도 있어요. 그러면 뼈와 피가 되어 일상생활 속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게 될 거예요. 또 어쩌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묵묵히 감내하면서 정성껏 갈고 닦을 수도 있겠지요.     (207쪽)

 

찬와이는 홍콩의 작가다. 중학시절 승주와 함께 애관극장에서 재미있게 봤던 성룡 주연의 영화 '프로젝트A' 시나리오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홍콩 영화의 화양연화 시절이었을테지. 그는 이른바 '노란우산혁명'으로 불리는 2014년 홍콩 시위 운동에도 진지하게 동참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10, 20대 남매가 주인공인 이 소설 <동생>에 담았다. 홍콩 MZ세대의 시선으로 바라본 홍콩 민주화 운동의 기록인 셈이다. 수개월을 온 몸을 던져 싸웠던 운동이 처절한 패배로 마무리 된 뒤, 자신들의 경험을 되짚어 말하는 누나 탄커이의 목소리가 울림이 있다. 내가 20대 중반에 했던 고민이나 생각과 많이 닮은게 놀라웠다. 사람사는 세상, 삶을 이어가는 원리는 어디나 크게 다를바가 없는 거겠지.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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