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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2.03 인생의 역사, 신형철 1
  2. 2023.01.29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조용호
  3. 2023.01.07 딜리터, 김중혁
  4. 2023.01.07 재수사 (장강명)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 사랑은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기를 원하는 단순하고 명확한 갈망이다. '너는 이 세상에 있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Amo: Volo ut sis." 세상이 고통이어도 함께 살아내자고, 서로를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는 유일한 가치라고 말하는 네개의 단어. (96쪽)

가브리엘 마르셀은 말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장은 뒤집어도 진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 역시 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어떤 불가능과 무의미에 짓밟힐지언정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으니까. 이 자살은 살인이니까. (97쪽)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이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잃는다는 것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그 사람과만 가능했던 관계도 끝난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다시는 그때의 나로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131쪽)

권세 있는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애국하라고 말할 때 그 말은 자신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에게 하라는 말이어서 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하고도 가능한 일은, '평상시에' 누군가의 사랑이 다른 누군가의 사랑보다 덜 고귀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유사시에' 돈도 힘도 없는 이들의 사랑이 돈 많고 힘있는 이들의 사랑을 지키는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 그리하여 '언제나'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그러니까 평화를 함께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이런 것도 애국이라면, 애국자가 될 용의가 있다.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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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이 발문을 쓸만한 작가다.

21세기가 20년도 더 지난 이 시점에 80년대 의문사 사건을 주제로

이토록 현실감 있고 밀도 있는, 또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을 수 있다니. 

새벽이 오고 있어요. 창호지를 바른 문살에 희미하게 여명의 빛깔이 스며들어요. 저 검은빛이 깔린 파랑은 분명 희망을 머금은 색이겠지요? 파도 소리는 여전히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군요. 저 소리가 가까이서 뛰는 당신의 심장 박동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54쪽)

가진 것 없이 맨몸뚱어리 하나로 임금을 벌어서 고향 가족까지 먹여 살리는 이들에게 그들의 권리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배운것들을 나눠 주는 일이 이토록 큰 죄가 되는 세상이라니, 어이 없고 원통하지만 어쩌겠어요. 새 세상이 올 때까지 당신과 내가 조금 더 어둠 속에 웅크릴 수밖에요. 나에게는 당신이 곁에 있어서 이 어둠이 결코 어둡지 않답니다. (96쪽)

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미약한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는 건 어둠의 세상에 태어난 이상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일 겁니다. (98쪽)

 

저자가 인용한 시가 참 아름답다.

파도타기 / 고정희​

둥근 젖무덤에 보름달 떠올라 하룻밤 사무치자 하룻밤 사무치자
팔 벌린 그 밤에 동쪽 샘이 깊은 물에 보름달 주저앉은 그 밤에...

느닷없는 부드러움이 두 가슴을 옥죄이던 그 밤에
깊고 푸른 밤이 불을 켜던 그 밤에
사십도의 강물이 범람하던 그 밤에....

불꽃춤 찬란하던 그 밤에
서해안의 파도소리 하얗게 부서지던 그 밤에
물미역 아름답게 흔들리던 그 밤에
별들이 내려와 드러눕던 그 밤에...

새벽 달빛 호호탕탕 넘어 가던 그 밤에
아아 아홉가지 봉황깃털 창궁에 자욱한 그 밤에
그대와 나 수미산 꼭대기에 떠올라 우주와 교신하던 그 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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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터 - 8점
김중혁 지음/자이언트북스

미추홀도서관에서 빌려 2023-01-06 완독.

김중혁은 그의 친구 김연수와 대비되는, 가볍고 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가.

다른 차원의 우주(평행우주?)가 존재한다는 SF적 설정을 전제로 한 이야기인데

그 평행우주를 포토샵 레이어에 빗대어 설명하려 시도한 점이 신선했다.

심지어 주인공들은 평행우주속에 들어가 자신과 상황을 통제하는 연습을 포토샵 툴로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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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사 1 - 10점
장강명 지음/은행나무

미추홀도서관에서 빌려 2023. 1. 4 완독.

친구에게 말했다. 장강명은 대가의 반열에 오를 작정인가보다고.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밀고 가는 힘도 대단한데, 그는 이 소설 속에서 그만의 독창적인 윤리학을 구축해 선보인다.

예를 들면 '트롤리의 역설'을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놓는다는가, 하는 방식으로.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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