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목가적 상태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한동안은 영원이었지만,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관계란 두 사람이 함께 지어서 그 속에서 살기로 정한 이야기, 집처럼 아늑하게 깃드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맨몸으로 돌아다녔고, 뱀처럼 피부가 벗겨졌고, 욕심을 잃었고, 두려움을 잃었고, 인간이 잃고도 살 수 있는 것이라면 거의 모든 것을 버렸다. 하지만 여러 언어를 배웠고, 치유자가 되었고, 함께 살게 된 원주민 부족들을 존경하게 되었으며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었다. 요컨대 그는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길 잃은 최초의 유럽인 중 하나였고, 돌아와서 이야기를 들려준 최초의 사람 중 하나였으며, 그 중 많은 이와 마찬가지로 그가 길 잃은 상태에서 벗어난 것은 돌아옴으로써가 아니라 스스로 다른 존재가 됨으로써였다. (106쪽)
진정한 어려움은, 진종한 생존의 기술은 그보다 좀 더 미묘한 영역에 있는 듯하다. 그 영역에서 필요한 것은 정신의 회복성이라고 부를 만한 능력,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든 기꺼이 맞을 줄 아는 능력이다. 저 포로들은 모든 사람이 살면서 겪기 마련인 사건을 극명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셈이었는데, 그 사건이란 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과거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으로 변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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