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문학동네,2023

나는 왜 이런 이야기에 많이 끌리는 것일까.

제목처럼 선이 가느다란 등장인물이 나오는 이야기. 약한자거나 소멸을 앞두고 있는 자들. 자신의 불행의 원인이 그저 스스로의 게으름이나 불운 탓이라 체념하지 않고, 그 (사회적) 연원을 찾아내려 애쓰고 함께 연대할 손을 찾는데 열심인 사람들의 슬프지만, 희미한 희망의 빛이 사위지 않은 스토리.

나의 결핍을 안고서 그것을 너무 미워하지도, 너무 가여워하지도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슬프면 슬프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 나를 계속 지켜보는 일. 나는 지금 그런 일을 하는 중인 것 같다. (책 날개)

맞아,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공부는 대학원 아닌 곳에서도 할 수 있는 거,희원씨도 알죠." (37쪽)

친구 E가 떠올랐어.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이.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44쪽)

<몫>에서.

윤금이 사건 (1992년),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 (우조교 사건, 1993년), 고대생 이대축제 난입사건 (1996년).

내 시선 또한 용욱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겠다. 부끄러웠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115쪽)
소리가 아이답지 않게 아무것도 조르지 않고 바라지 않는다고 그녀가 자랑하자 그는 놀란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소리에게 물었다. 소리는 뭘 먹고 싶어? 소리는 뭘 하고 싶어? 소리가 아무거나 괜찮다고 대답하면 아니, 소리가 진짜 먹고 싶은 거, 라며 다시 물었다. 아무거나는 답이 아니야, 소리야. 그는 그렇게 말했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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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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