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지음, 역사비평사, 2023

이런 책 참 좋다. 내 동년배가 집필한 터라 아주 많은 것들이 공감된다. 과학사 연구자/교수라는 본업을 수행하는 와중에 20년 가까이 한 주제를 파느라 꾸준히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온 수고가 물씬 풍겨난다. 재미있고 흥미진진한데 유익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데다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자극까지 준다.

20대 후반에 공병석이라는 친구와 함께 한 적이 있어서 그런가, 이 책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 공병우가 낯설지 않았다. PC통신 1세대라면 한글이라는 언어체계를 컴퓨터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완성형/조합형 논쟁)에 많이 관심을 가졌던 세대일 것이고, 나도 그 축에 속하니 그 이름을 접해보지 않았을리 없겠지.

그 시절에 만난 현철은 세벌식 자판을 써서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도 그런지. 세벌식이 한글 창제 원리 (초성/중성/종성)에 입각한 과학적인 글자판인데다가 타자 속도도 두벌씩보다 훨씬 빠른 효율적인 자판이란 건데, 굳이 그걸 새로 배울 수고까지 들이고 싶지 않았다.

군 시절, 인사행정병으로 몇 달 보직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썼던 애플리케이션은 '보석글'이었다. 폰트는 딱 하나 명조체, 글자크기는 기본 사이즈 말고 세가지가 더 제공되었다. 가로 200프로 확대, 세로 200프로 확대, 둘다 확대. 심지어 직관적이지도 않았지. 내가 출력하려는 결과물과 화면에 내가 타이핑하는 모양이 늘 일치하지 않았다.그 어설픈 앱을 가지고 몇달 사이 내 타이핑 속도는 200타에서 500타까지 늘어났다. 그날치 일감을 소화해야만 퇴근이 가능했으니. 그 시절에 알았다. 아래아 한글이 얼마나 엄청난 소프트웨어인지. 

이 책은 이 모든 이야기들의 역사와 발전과정, 사회적의미를 다 포괄하고 있다.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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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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