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책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살짝 호감이 가는 대상이 너무 유명해져서 누구나 아끼고 사랑한다면, '뭐 굳이 나까지' 하는 심리가 발동하곤 한다.

하루키가 내게는 그런 경우였다.

이 책은 하루키의 단편집이다. 

요새 시집을 거의 읽지 않는 것이 단편에 잘 손을 안대는 이유와 비슷한데,

짧은 글에 많은 함축이 담겨 있는 것을 찬찬히 음미하며 읽어내기가 부담스러워서 그런것 같다.

이 책은 무척 재미있었다. 대가다운 단편모음집이라고나 할까.

일상의 언어로 구성된, 과도한 비유를 자제하는 평이한 문장으로 이리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게 하루키의 힘이겠구나 싶었다.

내가 나이가 좀 들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더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의도한 바였는지 모르겠으나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인생의 정점에서 한풀꺾여 하강할 일만 남은 중년 남성이 많다. 중년이거나 삶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진 초로한 청년이거나. 인생의 쓴맛 단맛을 나름 경험한 나이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상대가 여성 (아내거나 애인이거나)일 경우 성적인 트러블-일방의 외도를 포함한-도 빠지지 않는다. 젊은 날엔 이런 소재에 집중하는 작가를 속류로 얕잡아봤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달라졌다. 그런 일상이 실은 사람의 생에서 몹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라는 걸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Posted by 나무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