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투신할 최소 시간 확보하기. 글을 쓰고 싶다는 이들에게 일상의 구조 조정을 권한다. 회사 다니면서 돈도 벌고 친구 만나서 술도 마시고 드라마도 보고 잠도 푹 자고 글도 쓰기는 웬만해선 어렵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39쪽)

  - 정말 그렇다. 모든 걸 다 쥐고서는 글을 쓸 시간도 없고 열정도 어느새 사그라들어간다.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51쪽)

  - 18년전, 형이 내게 했던 말, "너는 삶은 아닌데 글은 참 래디컬해." 이 말이 얼마나 큰 비판인지 왜 그땐 몰랐을고. 적어도 글만이라도 래디컬할 수 있어서 좋다고 나는 자위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무척 낯뜨겁다.


글을 쓰다 보면 꼭 사랑에 매달리는 사람처럼 구질구질하고 구차해질 때가 많다. 내가 아는 걸 다 설명하고 싶고 감정을 다 드러내고 싶고 내 생각을 더 헤아려 달라고 조르고 싶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픈 욕심이 넘치니, 글이 안 끝난다.  (53쪽)

 - 나는 글도 사랑도, 그리하여 삶도 만연체다. 내 늘어지는 문장의 독특함을 감지한 이들이 내게 호감을 표했을 것이며, 내 늘어지는 문장이 욕심투성이라는 걸 간파한 이들이 내게 실연을 통보해왔을 것이다. 


한 사람이 글 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연습과 노력 외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단지 구직을 넘어 삶의 자리를 되찾아 주는 일임을 나는 선배와의 인연에서 실감했다. 나는 누구에게 황금 같은 말을 건네주는 '처음'이자 글쓰는 삶을 찬미하는 증인이 되어 줄 수 있을까.  (135쪽)

 - 글쓰기는 연애하는 일과 닮은 것일까.


"나쁜 글이란 무엇을 써는지 알 수 없는 글, 알 수는 있어도 재미가 없는 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그대로만 쓴 글, 자기 생각은 없고 남의 생각이나 행동을 흉내 낸 글, 마음에도 없는 것을 쓴 글,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쓴 글, 읽어서 얻을 만한 내용이 없는 글, 곧 가치가 없는 글, 재주 있게 멋지게 썼구나 싶은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없는 글이다."   - 이오덕   (53쪽)


투쟁적 사안의 글쓰기는 더욱 숙고하게 된다. 누가 그랬다. 시민 단체 성명서나 글을 읽으면 '멱살 잡히는' 기분이라고.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로 끝나는 관용구는 얼마나 식상한지...... 인간의 존엄은 숱한 성명서 속에서는 상투적이 되었지만, 현장에서는 결코 상투적이지 않다.  (151쪽)


'부사를 자제할 것, 이 원칙은 거의 모든 글쓰기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이 문장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부터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까지 부사를 자제하라고 당부한다.'

부사가 번성하면 주어와 동사로 이뤄진 주제 문장의 메시지가 묻힌다.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이 감칠맛은 나지만 원재료 맛을 잠식하는 것처럼 말이다.   (171쪽)

  - 만연체와 부사 남용은 짝패였구나.


퇴고를 하려면 읽고 또 읽을 수 밖에 없다. 크게는 두 가지 질문을 오가면서 읽는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자 했는가'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잘 전달되었는가'. 그 단어가 정확한지, 문장이 엉키지는 않는지, 단락 연결이 매끄러운지, 근거는 탄탄한지, 글의 서두와 결말의 톤이 일관된지, 주제를 잘 담아내는지, 살피고 고친다.  (193쪽)


개인적 경험을 끌어올 때는 그 자기 노출에 보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내 경험이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가. 뻔뻔한 자랑이나 지지한 험담에 머물지는 않는가. 타인의 삶으로 연결되거나 확장시키는 메시지가 있는가.  (199쪽)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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