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유

 

그 걸인을 위해 몇장의 지폐를 남긴 것은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닙니다

 

하필 빵집 앞에서

따뜻한 빵을 옆구리에 끼고 나오던 그 순간

건물 주인에게 쫓겨나 3미터쯤 떨어진 담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그를 내 눈이 보았기 때문

 

어느 생엔가 하필 빵집 앞에서 쫓겨나며

부프는 얼음장에 박힌 피 한 방울처럼

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이 적막했던 것만 같고......

 

이 돈을 그에게 전해주길 바랍니다

내가 특별히 착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잘 기억하기 때문

 

그러니 이 돈은 그에게 남기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나에게 어쩌면 미래의 당신에게

얼마 안되는 이 돈을 잘 전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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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라는 유심론

 

눈앞에 열명의 사람이 잘빠진 몸매로 웃고 있어도

백명의 사람이 반짝이는 선물을 펼쳐 보여도

내 눈엔 그대만 보이는

 

그대에게만 가서 꽃히는

마음

오직 그대에게만 맞는 열쇠처럼

 

그대가 아니면

내 마음

나의 핵심을 열 수 없는

 

꽃이,

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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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그치고 잠깐 햇살

 

지저분한 강아지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던

동해 바닷가 막횟집 평상 아래

눈 그치고 잠깐 햇살,

일어나 몸을 턴 강아지가 저편으로 걸어간 후

 

동그랗게 남은 자국,

그 자리에 손을 대본다

따뜻하다

다정한 눌변처럼

 

눈 그치고 살짝 든 평상 아래 한뼘 양지

눌변은 눌변으로서 완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아주 조그맣더라도

 

조그만 나뭇잎 한장 속에

일생의 나무 한그루와 비바람이 다 들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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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그림자의 사전1

 

겨울 숲 새 둥지처럼 군데군데

한없이 여린 풀빛이 뭉쳐 있다

물세탁한 지폐처럼 보드라운 풀빛

 

인간의 사전은 그 풀빛을 '기생'이라 부르지만

참나무와 겨우살이의 공생은 그들의 사정

옹이가 더러 굵어지고 열매를 조금 덜 맺지만

조금 덜 가지고 함께 살 수 있어 참 재미있다고

쪼글한 입매로 웃는 참나무의 말을 들었다고 할까

 

겨우살이 자라는 나무 아래서 키스하면 결혼하게 된대!

사랑의 전설을 즐기는 겨우살이와 참나무가

키득키득 소소하게 벌이는 파티 소식

신비가 사라진 세상을 위로하는

풀빛 마법을 보았다고 할까

 

꼭 집어 말할 순 없지만 이것 하나,

산천초목의 마음이 모두 인간의 사전 같을라구!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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