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육체적인 죽음을 넘어 두 번째 소멸을 겪을 때가 아닐까? 누군가에게 잊힐 때, 그보다 더 고통스럽기로는 어떤 이유에서든 죽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참을 수가 없어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기억에서 지워버릴 때, 그는 정말로 죽은 것이다. (68쪽)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질병의 말기 단계에서는 고통에 시달리지 않는다. 수분 부족은 고통스럽지 않고 불안이나 불쾌감을 수반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연이 그런 방식으로 진정시키는 작용을 하면서 죽음의 과정에 개입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수분 부족은 의식을 둔화시키고, 죽음의 단계에서는 불안을 진정시키는 작용도 한다.(74쪽)
말기 환자에게 튜브나 정맥을 통해 인공적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행위에는 이를 통해 환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평온을 유지하고 수명을 연장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 (그러나) 수많은 연구의 결과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튜브 영양 공급을 통해 중증 치매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생존 기간도 연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자연적인 방법으로 영양을 공급받은 환자들에게서는 감염 사례와 다른 심각한 후유증이 훨씬 적게 발생했고, 생존기간도 더 길었다. (76쪽)
간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인공영양을 실시하라는 의사의 처방은 상당히 많은 경우에 환자의 안녕보다는 요양원과 담당 의사, 또는 가족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기여한다. .... "peg 튜브를 삽입해야 합니다. 아니면 당신 아버지가 굶어 죽고 목말라 죽기를 바라십니까?" 라고 말할 때, 가족들에게는 대부분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부담스러운 상황과 동의하지 않을 경우 가족의 죽음에 공동 책임이 있다는 비방을 받을까 두려워 대부분 인공영양에 찬성한다. (81쪽)
(완치의학/급성질환 치료 의학과 완화의학/노인 간병 사이에) 발생하는 재정 분배의 뚜렷한 불균형이야 말로 이런 사태의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 불균형은 젊음에 대한 열광과 노인 없는 세상에 대한 숭배에 빠진 정치적, 사회적 실상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노인들은 간병에 의존하지 않고 소비자로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동안에만 존경과 관심을 받는다. 반면 간병이 필요한 상태가 되면 즉시 비용을 야기하는 요인으로만 취급된다. (99쪽)
요양원 제도는 20세기 사회복지 정책의 유물이다. 대안으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생활 원조 제도와 주거 형태를 장려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급속도로 증가하는 비용을 감안해서라도 주거 공동체와 이웃 간 상호부조 정신을 되살리고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제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모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103쪽)
(사전의료지시서나 존엄사 관련) 생명 보호는 많은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더없이 높은 가치이긴 하지만, 인간 존엄의 핵심은 생명 보호가 아닌 자기결정권이다. 기본권의 주체인 개별 인간만이 자신의 존엄을 이루는 요소가 무엇이고, 자신의 신체적 온전함과 생명을 어느 정도까지 보호할 지를 경정할 권리가 있다. 인간의 존엄에는 다른 사람이 규정한 인간 존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개인의 존엄을 보호하는 것도 포함된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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