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을 떠올리면, '통일의 꽃'이라는 민중가요가 절로 떠오른다.

그 노래를 흥얼거리던 짝사랑 선배도 떠오르고,

통일의 꽃 임수경의 영웅적 행적과 고난에 대해 진심을 다해 사력을 다해 이야기 하던 그 선배의 얼굴도 떠오른다.

1990년, '조국은 하나다'를 목놓아 울며 부르던 임수경의 얼굴이 대형 스크린 가득 펼쳐쳤던 광주 전남대, 4기 전대협 출범식이 떠오른다. 송갑석 의장과, 임수경과 함께 옥에 갖혔던 '홍길동' 임종석도 떠오른다. 감동으로 사무쳤던 그날의 기억은, 화인같았다.

그리고 떠오른다. 백골단의 쇠파이프가 생각나고, 지랄탄 연기에 기절해 널부러지던 동료와 선후배들의 모습이 생각나고, 죽도록 두드려맞고 감옥에 갖혔던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난이었으므로 자신감 넘쳤던 순간이, 그 때 느꼈던 해방감의 여운이 아직 잊혀지지 않고

임수경이 그 시절, 그 한 시대의 양심의 표상이었으므로, 그의 모습을 보며 최선을 다해 끝까지 밀어부치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 오늘의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하루종일 현장에서 X뺑이 까다, 퇴근해 밥지어 애들 먹이고 홀로 조용히 앉아 막걸리 잔 기울이다

20년전 나의 영웅 임수경이 욕보는 뉴스를 읽다 몹시 슬퍼졌다.

나처럼 임수경이 영웅이었던 젊은이들은 숱하게 많을 터인데,

임수경을 생각하며 고난에 찬 오늘을 견디어 냈던 그 시절의 선각자들, 누구는 정치인이 되셨고 누구는 경영자가 되셨을 터이고, 아뭏든 1989년의 예수 임수경이 23년만에 부활하여 국회의원이 된 만큼 각자의 자리에서 방구깨나 뀌는 입지 가진 이들 많을 터인데,

어찌하여 임수경의 편을 드는 이가 없는지 화가 난다. 뭐가 그리 잘났다고 모두가 임수경에 돌을 던지고만 있는지, 그 돌을 대신 맞아주는 이 없는지

아주 슬퍼진다.

 

나는 임수경이 왜 '변절자'라며 흥분했는지 알것 같다.

내 경험으로는 NL출신 다수가 그런 경향이 있다. 북한 이탈주민을 일종의 '변절자'로 바라보는 태도.

적어도 그런 태도는 임수경이 북에 찐하게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 그이에게 유독 북부조국 - 허, 요샌 이런말도 아예 없어졌다 - 에 대한 각별한 변치않는 사랑이 있어서 '변절'이란 말이 튀어나온 건 아닐 것이다. 그냥, 정서다, 나같은 놈조차 공유하는 정서. 낡은 운동권 정서.

하여, 내가 북한이탈주민을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을 꺼낼 때 조심스러웠다. 나도 NL이었으므로.  내 친구 다수가 그러하므로. 그런 정서 속에 있으므로.

그래서 첫번째, 임수경은 백요셉을 보고 진심으로 화가 났을 거라 나는 생각한다.

더우기, 북한 이탈 주민 백요셉은 농담의 허용한도를 훨씬 넘는 언사를 농담이라고 건넨 상태였다. 충분히 임수경의 꼭지가 돌았을 법하다. 농담을 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남한의 운동권 (출신) 인사들에게는, 60년전 이승만 때나 40년전 박정희 때나 30년전 전두환 때나 지금이나, '너 김일성같은 놈'이라거나, '북한으로 보내버려야해'라거나, 이런 욕설은 여전하다. 여전히 그런 욕설은 힘이세다. 즉, 대화를 할 때 그런 욕설은 농담으로라도 하면 안되는 정도에 해당한다.

적어도 남한에서는, 농담으로라도 그런 욕설 들으면, 전두환 노태우시절까지는 재수없으면 잡혀가서 고문 당하는 경우를 당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신세 조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백요셉씨는, 그 선을 넘는 농담을 해버렸다. - 그가 농담이라고 하나, 나는 그가 혹연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던 건 아닌지 싶다 - . 시키는 대로 안하면 북한에서는 총살감이라고? 정권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서 거의 남한에서 사회적 총살을 수년간 당했던 임수경에게 그런 농담을?

백요셉의 농담은, 총살을 운운했던 그의 농담은, - 아마도 안기부의 고문을 받았을 임수경씨의 20년전을 떠올린다면, 그리고 가족의 죽음조차 경험했던 임수경의 아픈 상처까지 살펴본다면, - 뭐 이런거다. "씨발년, 확 죽여버릴라, 어머 언니 화났어? 미안 농담인데". 초면식의 앳된 젊은이로부터 이런 욕설을 농담으로 들으면, 그것도 술 한잔 한 상태에서, 참을 수 있을까?

 

자랑찬 사노맹의 깃발을 휘날리던 남한 최대 지하혁명조직의 수장 김문수가 정권의 개나팔수가 되서 멍멍짖는 판이다. 그 개나팔수 오늘 또 짖었다. 임수경, 임종석 모두 주사파라고?

정말 웃긴다. 아마 20여년전의 사노맹 중앙위원 김문수는 이렇게 주사파를 욕했을 것이다. '주사파란 정통 사회주의 혁명의 궤에서 어긋난 민족주의자들이다. 우리는 걔네들이랑 같이 못놀겠다, 수준 떨어져서'. 자기는 '진짜' 공산주의자이지만, 주사파는 수준낮은 민족주의자에 불과하다고. 그래서 욕먹어도 싸다고.

20여년이 지난 후 김문수는 또 욕한다. 그 정반대의 입장에 서서. 국가관이 의심스런 주사파는 오늘도 대한민국 국회에서 암약한다고. 저는 주사파를 훨씬 능가하는 진짜 공산주의자 였다는 얘기는 쏙 빼놓는다. 개XX.

사람이면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투박하고 서투르지만, 날이 바짝 선 초심의 결기가 보이는 임수경이, 변절하더니 원래 일본놈보다 더 독립군 때려잡는데 앞장섰던 70여년전 투항한  친일파처럼 여기저기서 '멍멍, 캥캥' 짖는 김문수보다는 훨씬 훌륭하다고 나는 믿는다.

 

사회주의 붉은 깃발을 휘날리던 김문수, 이재오는 그들이 타도하고자 목숨걸었던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수장이 되고자 환장해 있는 상태다. 함께 조국통일의 깃발을 휘날리며 통일의 사상을 벼렸던 동지들은 그럼 지금 어디에? '강철서신'이라는 비범한 소책자를 통해 나를 포함한 수많은 조국의 젊은이들을 NL의 대오로 안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김영환은 진즉에 변절했다. - 그를 믿었던 많은 남한 운동가들을 - . 고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최홍재도 맛이 간지 오래며, 하태경도 그 멤버에 속한다.

임수경이 유독 하태경을 거론했던 건, 그 축들 중에 하태경이 이번에 당선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루어보건데.

 

나는, 임수경의 술자리 언행이 말도 안되게 잘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하필 북한이탈주민을 상대로, 돌이키기 어려운 언행을 저질러버렸다. 사죄는 당연하다. 그리고 안타깝다. 그이의 아마츄어리즘이.

그러나 나는 임수경이 왜 그런 발언이 그 맥락에서 왜 튀어나왔는지, 문화와 정서를 공유하는 동시대의 사람으로서 이해가 가는 대목이 있다. 그리고, 도대체 왜 모두들 한목소리로 돌만 던지는지 정말 분통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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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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