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털기

사람일지 2012. 6. 19. 23:41

130년 묵은 일본식 목조가옥 리모델링 공사중이다.

한창 목공사를 하다, 목공팀이 컨디션이 안좋으셔서 점심까지만 일하고 철수해버린 오후

무진장 더웠던 오늘 오후 홀로 현장에 남아 먼지를 털었다.

130년 묵은 집이므로, 130년 묵은 먼지가 털렸다.

콤프레샤로 굳세게 압축된 공기를 사정없이 뿜어내는 에어건을 쏘아대며

구석구석 틈새마다

죽어라고 압축공기를 불어대었다.

일에 열중했다. 4시간동안 꼭 두번 쉬었으니

열중하며 땀을 흘릴 땐, 쾌감이 있다. 가슴 한켠에서 우러나오는 묵지근한 뿌듯함.

'으흠. 그래도 오늘 내가 밥값은 했군. 사람구실? 뭐라도 흔적은 남겼군' 하는 뿌듯함, 펜대만 굴릴 때는 느낄 수 없는 그런 것.

130년 묵은 종이조가리, 고운 흑색의 먼지덩어리가 털려나왔다, 나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오랜동안, 그녀석들 자리였을 터 이므로.

...

일 끝에 오랜 벗을 만나 막걸리 두병 비우고 집에 오다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오후 내내 죽어라고 일했는데, 표가 나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의 종류도 애매하다. 이게 청소인가? 노가다 용어로 현장정리인가? 틈새에 끼여 있었던 먼지뭉치, 굳이 털지 않더라도 별로 표나지도 않았을 먼지 덩어리들.

4시간 동안 털어낸 먼지를 쓸어담아 자루 하나를 채울 정도였지만 표는 나지 않았던 모양을 돌이켜보며,

꼭, 내가 사는 게 이런식이다, 싶었다.

일의 성과를 계량하진 못해도 따져보면 의미있고 소중한 일 많지 않겠는가, 어쨌거나 내가 뿌듯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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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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