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일이 사람 읽는 일과 닮았다.

 

어릴적엔 스폰지처럼 읽어들였다. 책의 생각이 내 생각이 되는 듯 했고, 나를 매료시켰던 그 사람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라고 믿기도 했다.

 

독서가 체계를 잡는 공부가 되면, 성취가 이루어진다. 학문으로 발돋움 할 수도 있다. 능동적으로 내가 탐구하는 주제를 잡고, 수평적/수직적 책 읽기를 조직적으로 해나가며, 메모와 노트가 바탕이 된 독후 글쓰기의 경험이 스스로 획득한 지식으로 쌓여갈 때 그러하다.

사람 읽는 일이 체계화되고 상호작용의 수준이 깊어지며 사회적인 양상으로 발전한다면, 그것은 운동으로 혁명으로 발돋움한다. 관계는 단순히 개인과 개인이 만나는 일의 차원을 뛰어넘게 된다. '조직', '조직화된 집단의 힘'은 개인들의 산술적 합과는 다른 새로운 질이다. 하나의 힘이 전체를 바꾼다, 동시에 집단의 누적된 선택을 지켜보며 얻는 깨달음이 개인의 운명을 바꾼다. 

 

자신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져있거나, 혹은 갈피를 잡지 못하며 사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거나 할 때, 독서와 관계는 종종 무력하다. 무력해도 어쩔 수 없다.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므로.

 

더이상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한다. 마음에 남는 구절들이 쉽게 잊힌다. 쉽게 잊혀버리는 마음에 잠깐 남았던 구절들은 심장을 울리지 않는다. 배움과 공부의 열정, 어쩌면 강박에서 자유로워진 상태이므로 갖는 장점들도 물론 있다. 어설픈 제한을 두지 않는 자유로운 독서와, 독서 자체가 주는 쾌락을 음미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사람의 일 또한 기록하지 않으면 자주 잊는다. 추억을 파먹는 관계가 싫다고 자주 뇌까렸지만, 관계속에 있는 서로에게 심상한 영향을 주며 살아가기가 더이상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젠 너무 잘 알기 때문일까 아님, 조직적이거나 체계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일까, 먼 기억은 생생한데 가까운 기억은 쉽게 잊힌다. 쉽게 잊은 그의/그녀의 이야기들, 내 짧은 기억력을 스스로 저어함으로로 인해 나는 그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가기가 쉽지 않아진다.

 

책도 사람도, 새롭고 탱탱한 것들보다는 반들반들 손때타고, 고유의 제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무엇보다 내 손에 착착 감기는 익숙함이 있는 것이 좋다.

 

일요일 늦은 밤, 오늘 이 순간 내 최대의 현실이자 과제인 아이들을 두고서,

책도 사람도 위안이 되지 못하고 술과 담배생각만 간절한 것도 닮은 것인가.

 

'사람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지털기  (1) 2012.06.19
임수경을 위한 변명  (2) 2012.06.04
양재준 형 타계  (3) 2012.03.20
문부식  (0) 2012.03.17
2012. 3. 3  (0) 2012.03.04
Posted by 나무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