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준 형 타계

사람일지 2012. 3. 20. 15:36
작년부터 부쩍 본인상을 알리는 부고가 오기 시작한다. 나이듦이다.
지난 토요일에는 그림그리던 재준이 형이 죽었다는 문자가 왔다.
황망했다.
여러번 만났어도 마음에 울림이 남지 않는 사람이 있고,
짧은 만남이라도 그 눈빛과 음성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인연이 있다.
형은 내게 그런 인연이었기 때문이다.

장례예식장이 전라도 정읍이라 솔찬히 먼 거리였지만 애들엄마도 군말없이 다녀오라 했다.
오래 전, 나와 애들 엄마의 결혼식 청첩장에 손수 인물화를 형이 그려준 적이 있다.
그때 진 신세를 잊지 않음이었으리라.

몇시간 후 발인이 바로 다음날이라는 문자가 다시 왔다.
그러면 바로 출발해야 했다. 함께 갈 벗이 필요했다. 광우형과 뜻이 맞았다.
형이 사정이 있어, 밤 11시에 파주에서 함께 출발했다. 내 트럭을 타고서.

새벽 2시가 넘어 도착했다. 호젓한 정읍 시골마을 장례전용예식장에 친지들과 친구 몇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건물 현관에 붙은 喪家 안내 표지를 보았다.

고인 : 故 양재준
상주 :
발인 : 2012년 3월 11일(일) 09:30

상주가 없다. 법도를 차리자면 맏형이 맡았을 것이다. 3일장도 길다고 2일장으로 줄여 뭐든지 조용하게, 서둘러 일을 정리하려는 식구들의 뜻이었나 보다. 농촌마을에서 부모보다 먼저 외롭게 살다 간 이라서, 호상치르듯 할 수 없었나 보다.
빈소입구에 흔해빠진 흰 국화 화환도 찾아볼 수 없었다.

탓할 노릇도 아니지만, 쓸쓸했다.

승관형에게 임종 전 후 순간의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시골에 내려온 후 2,3년 사이 고독하게 지냈던 것 같다.
혼자 사니 밥은 잘 챙겨먹지 않고 술을 많이 마셨다.
그 날도 여느날처럼 지내다 잠이 들고 다시 깨어나지 못한거라 했다. 그 흔한 병원치레 한번 하지 않았다.

"졸라 멋있게 살더니 졸라 멋있게 죽었다. 실컷 그림 그리고 사랑하고 술마시다가, 지가 무슨 장승업이라고, 누구한테도 티끌만큼도 부담안주고 자다가 혼자 죽어버렸다"

눈물이 안구 밑까지 차올랐으나, 벗해 마실 사람이 없어 일찍 파한 술자리탓에 울지 못했다.
광우, 승관, 지솔이 먼저 올라가고 혼자 남아 처남되는 완모와 담배를 나눠피고 잠들었다.

대부분 멀리서 자가용을 타고 온 가족외에는 따로 장지에 함께 갈 문상객이 없어, 버스 한대 부르지 않았다.
앰블런스 비슷하게 촌스럽게 치장한 봉고차에 관을 넣고 전주 화장장으로 갔다. 사람이 적고 장례식장도 작아 화장장에 닿기 전엔 상여를 따로 맬 필요도 없었고, 화장장에 도착하자 마자 기다리는 시간도 거의 주지 않고 바로 화장을 시작했다. 가족들이 미처 눈물을 쏟아낼 틈도, 감정을 수습할 여유도 없이.

마지막 풍경조차 하도 고독하여
쓸쓸했다.
쓸쓸했다. 사는 일이, 살아갈 일이 쓸쓸해졌다.
3시간여를 혼자 달려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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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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