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2009, 문학동네

역사적 인물에 매달려왔던 김훈이 현재의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 장편소설로는 이게 처음인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읽은 한에서는. 과연 그의 장기인 짧고 건조한 스트레이트 기사투의 문장이 힘을 발휘한다. 매향리 미군 폭격장과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등장하며 여러 종류의 죽음이 서술될 뿐 아니라, 주인공이 그의 전직이었던 신문사 사회부 기자다. 수도 없이 많은 사건이 다루어지며, 슬프고 애닳은 그 사건들은 수술용 메스와 같은 그의 문장속에서 해체되어 오로지 무의미만 남는 듯하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속사포같은 단문에 이어 이어지는 그의 만연체의 문장에서는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는' 인생의 부조리에 대한 한없는 우울함이 묻어난다. 이 역시 그가 가진 독창적인 장기였다. 였다.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되는데, 이 반복이 슬슬 지루해진 것은 이미 "내 젊은 날의 숲"을 읽으며 느꼈던 바. 그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는 것일까.

그의 독창성 때문에 먼저 와닿는 장단점을 배제한다면, 이 소설은 그러나 매력이 있다. 피하고 싶은 인생의 실체적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고 할까, 혁명가연했던 선배는 경찰에 끌려가자마자 동지들을 줄줄히 불고, 불었지만 삶은 나락으로 떨어져 고향에서마저 쫓겨나고, 거의 영웅으로 대접받았던 정의로운 소방수는 불난 보석상에서 한주먹의 금붙이를 털어 나오고, 그 돈으로 부자가 되는 대신 병든 몸뚱아리를 돌보는데 급급하고, 내 고독을 위무해줄 뿐이었던 연애는 연인의 유학으로 끝나버리고, 보호받아야 할 약자들은 개에 물려 죽거나 중장비에 으깨어져 죽거나 죽도록 매맞거나... 이런 식인데, 이런 식인 것이 내 살아가는 일들의 양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으므로, 결국 책을 물릴 수가 없었다.



<한국의 근대건축>, 오창섭 외, 2011, 북노마드

근대건축 중에서도 요새 다루고 있는 일본 목조주택 리모델링의 사례가 들어 있어 반갑게 빌어 온 책. 한국의 근대건축에 대한 소개와 사례, 보전 정책에 대한 제언 등 몇개의 짧은 논문을 모은 문고판. 서울 명륜동 목조주택의 존재를 알게 되고, 몇가지 힌트를 얻게 된 것이 중요한 소득. 그 밖에는..

서당개 3년인 건가. 문고판 책에서는 이제 그다지 건질게 없었다.



<표백>, 장강명 장편소설, 2011, 한겨레출판.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표지에 쓰인 홍보카피 "파격인가, 도발인가, 아니면 고발인가!"가 과장이 아니다. 아픈 현실을 더 끔찍한 스토리속에 담아 세상을 향해 통렬한 한방을 날리는 김숨 을 읽고 느꼈던 탄복.. 비슷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20대가 왜 이리도 찌질한지, 그 연원을 찾아간다. 작중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것은 20대 젊은이들 스스로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간파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그가 - 작가가 볼 때엔 체제의 문제이나, 변혁운동 같은 방식으로 그 체제를 혁파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제목처럼 체제에 대해 삐딱한 사고를 갖기전에 살벌한 생존경쟁의 장에서 자라나는 이 세대들은 이미 "표백"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고, 조금이라도 딴생각을 했다간 낙오자가 되는 것 외에 다른길은 없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철저히 원자화된 이들은 집단으로 뭉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체제에 동화되어 살기를 거부하고자 하는 영혼들이 없을 수는 없는 법. 이들이 택한 방식은 일종의 '자살클럽'의 조직이다. 이 체제속에 생애를 걸고 살아가는 일 자체를 거부해야 하는데, '대안의 삶'의 형식이 존재할 수 없다면 죽음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제에 작더라도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커다란 울림을 주는 죽음의 방식을 택해야 한다. 그래서 자살을 조직한다...

오늘의 청년문제를 접근하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이다.



<나는 반대한다>, 김정욱, 2010, 느린걸음

- 부제 '4대강 토건공사에 대한 진실 보고'

우리나라 1세대 환경과학자인 김정욱 교수의 4대강 반대리포트. 그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70년대에는, 국책사업에 반하는 입장으로 논문을 내는 교수가 끌려가 고문을 당하거나 기관원의 감시와 통제속에서 살아야하는 시대였다. 그 또한 피해자였다.

평생 양심을 지키며 실천해온 과학자로서 그는 말한다. "사람을 왜 죽여서는 안되는가" 하는 질문에 구구절절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며 답해야 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라고. 인간들의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말해야 할 답변은 아주 단순하다. "살인하면 안된다"

그는 담담히 이야기한다. 4대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라고. 그래서 "나는 반대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MB정부는 관변학자들과 전문가들을 총동원하여 홍수예방이나 맑은 물 확보등을 하기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 국민을 현혹하므로, 학자인 그는 논리적으로 답변해야 할 사명감을 느낀다. 이 책은 그 답변서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의 명분을 조목조목 빠짐없이 반박한다. 4대강 사업은 오로지 토건재벌을 먹여살리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임을 설득력있게 논증한다. 

아주 중요한 책이다.



<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2011, 창작과 비평사

- 20년전 읽었던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강렬한 인상이 남았기 때문일까, 어느 서평처럼 좀 밋밋했다.

<서양미술순례>에는 도판이 함께 실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미술이란 이해의 깊이를 떠나 완결된 하나의 작품에 대해 단번에 시선을 보내고 되돌아오는 느낌을 음미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에 비해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60-70년대에 학생시절을 보낸 그는 클래식 음악에 얽힌 추억보따리가 있지만 나는 그조차 없다. 여자친구와 겉멋으로 주고 받았던 몇장의 앨범을 빼곤 고전음악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하여 그가 담담하고 디테일하게 풀어놓는 서양고전음악에 대한 서술이 눈과 마음에 잘 와닿지는 않았다.

오히려 감동과 재미를 느꼈던 건, 음악 외의 그 자신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다. 윤이상 선생에 대한 글, 그의 형제들과 가족사를 다룬 글을 읽으며 '디아스포라'의 사람 서경식의 깊숙한 내면을 알게 되었고, 역사와 인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교양으로 읽는 건축>, 임석재, 2008, 인물과 사상사

- 임석재 교수는 엄청난 다작을 자랑하는 건축연구자다. 그의 도서목록을 볼 때마다 꼭 한번 등정하고 싶은 봉우리라 생각해왔다.  전문서적이라 쉽사리 엄두를 못내다가 그가 간간히 내고 있는 대중서부터 시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은 책이다.

- 제목이 주는 평이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건축계에 입문한지 얼마안된 나도(나이므로!) 절감하는 우리나라 건축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주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 건축/건설업계의 문제점, 아파트와 대형상업건물을 닥치는 대로 때려 지어 오로지 더 많은 이윤만을 추구하는 한국 건축문화의 후진성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다윈 지능>, 최재천, 2012, 사이언스북스

- 요새 최재천에 꽂혔다는 친구의 추천으로 읽었다. 도정일 교수와 함께 쓴 <대담>을 읽었을 뿐 그가 직접 쓴 책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에 대해 내가 가진 정보도 한국사회에 '통섭'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며, 친구들이 일하는 단체에서 그를 강사로 초빙했는데 아주 좋더라는 평가 정도.

-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다윈전문가라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진화론의 권위자다. 2009년 다윈 탄생 200주년에 기해 우리나라 과학계와 사회에서도 전기를 출간하는 등 다윈을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는데, 이 책은 그 흐름속에서 탄생했다.

- 재작년 읽었던 '다윈 평전'에서 받았던 충격과 감동을 재확인하는 독서였다. 한국버전 요약집의 느낌..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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