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버블링 debubbling, - '부동산 투기로 과열된 경제의 거품이 빠지는 현상' 정도로 풀이할 수 있는 말이렷다.

'88만원 세대'부터 그랬듯이, '생태요괴전', '생태페러다임' 등 우석훈의 저서는 참신한 제목을 뽑는데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번 책도 그냥 그런 참신한 제목 쯤, 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5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장을 넘겨갈수록 이번 책의 제목은 '참신해보이려구' 뽑아낸 단어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저자가 보기에 토건의 극한이 어떤 모습인가를,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발호와 함께 벌어졌을 때 한 나라가 얼마나 끔찍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를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토건의 시대가 활짝 꽃피었다면 이제 시드는 계절이 찾아온다는 것인데, 그 과정을 '디버블링'이라 칭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일본의 지난 1990년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른다 하는데, 이게 바로 디버블링(거품붕괴)였다.

일본 못지않은 디버블링 과정이 우리에게 곧 닥칠 거라는 게 우석훈의 주장이다. 그가 예상하는 한국의 디버블링은 일본보다 아주 나쁠 가능성이 많다. 이유는? 일본은 최소한 디버블링과 신자유주의가 겹쳐서 찾아오지는 않았다는게 첫번째다. 그리고 일본은 한국경제의 역동성은 없지만, 경제가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나라다. 한국처럼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나라가 아니다. 예측이 가능하고 룰이 지켜지는, 한국보다는 훨씬 앞선 자본주의다. 중앙정부와 지방토호가 꿰어찬 지방정부의 합작품이 토건이라 할때, 그 대안은 의연히 '지역서민경제'의 회복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이런면에서도 일본이 우리보다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는데, '가나가와 넷토'의 성공사례로부터 찾아볼 수 있듯 일본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강력한 분권주의의 전통, 풀뿌리 주민 참여 네트워크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에는 없고 우리에게만 있는 특별한 요소들이 여기에 더해지면, 한국의 디버블링의 양상을 예상할 수 있다. 전체학생의 80%가 대학에 진학하고, '대치동'으로 상징되는 사교육 자본주의 - 학원자본이 증시에 상장한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 가 공교육을 완전히 케이오시킨 교육. 한국에만 있다. 일본도 대학진학률은 50%지만, 고교시절까지 한국처럼 애들을 사교육에 몰아넣어 잡지는 않는다. 한국은 정부가 앞장서서 농업을 포기시킨지가 오래되었다. 거기에다 뭐라 하면 '핸드폰 판 돈으로 쌀 사먹으면 되지, 촌스럽게 왠 난리냐'고 쏘아붙인다. 일본은 식량자급률이 우리보다 훨씬 높은데, 식량자급의 중요성을 진작에 깨닿고 '지산지소운동-내 고장에서 생산한 먹을거리를 먹자-을 활발하게 벌이는 등 민관합동으로 잘 대응해 나가고 있다.

여기까지 논리를 전개해본다면, 우리에게 닥칠 디버블링은 아주 끔찍한 것이 될 거라는 예상이 나온다. 예를들면 부동산 시장의 전환이다.1-2년 내에 부동산 투기의 거품은 본격적으로 빠지기 시작할 것인데, 최근 경험하고 있는 극심한 전세란은 그 전조다. 전세란 주택 보급의 급격한 확대 시기였던 과거 20~30년 전, 목돈을 댕겨 재산증식을 목적으로 아파트 구입에 투자하려는 집주인들의 높은 수요때문에 생겨난 오로지 한국적인 시스템이란다. 1950년대 전쟁 직후의 한국의 통계를 보면. 놀랍게도 자가 주택 보유자가 80%에 이르렀고, 오늘날 전세에 해당하는 용어인 '차가' 유형은 10%가 채 안되었다고 한다. 즉, 당분간은 전세란이 지속될 것이며 '반전세'의 출현등 일정한 조정국면을 거쳐 선진국의 경우같은 월세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외국의 경우라면, 한국보다 보증금이 훨씬 낮은(길어야 6개월 가량의 월세 선납)대신, 월세가 아주 비싸다.

즉, 일본식의 '잃어버린 10년'은 아주 점잖은 모델이 될 터인데, 일본보다 모든면에서 열악한 한국에게 닥칠 디버블의 양상은, 세계 5위권 경제대국으로 상승하던 정점에서 끝없이 추락한 과거 아르헨티나 수준이 될까? 한마디로 상상을 초월한 끔찍한 것이 될지 모른다. 전세가 사라지고 높은 월세가 자리잡힐 거라는 예 한가지만으로도, 그것이 바로 오늘 나의 일상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충분히 공포스럽다.

한마디로 이 책 디버블링은 우석훈 식 '요한계시록'이다. 한편, 이 책을 잘 따라 읽어가다보면 우석훈의 '명랑한 공격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일관되고도 집요하게 토건주의에 대한 정면승부를 해 왔던 그, 왜 한국 최초의 생태경제학자임을 자처하며 그리도 발랄하게 토건에 무릎꿇은 진보, 아무 대책없는 생태근본주의를 싸잡아 공격할 수 있었나, 하는 의문이 비로소 풀릴 수 있었다. 생태주의도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와 충돌하고, 충돌이 아닌 접점에서 비전과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정치와 경제, 과학기술과 교육, 복지와 환경을 아울러 종횡무진하며, 탈토건 - 디버블링은 무섭게 말하면 거품붕괴지만, 희망을 섞어 풀어쓰면 '탈'토건주의가 된다 - 시대를 어떻게 능동적으로 맞이해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인 대안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마지막 장 '디버블링과 국민경제의 생태적 대전환'에 딸린 글들의 소제목을 보자.

-일주일에 이틀 일하는 정규직, 재택근무 그리고 완전 연봉제 (노동)

-사교육 폐지, 주 4일제 수업 (입시와 제도교육)

-등록금 100만원 시대 (대학문제)

-집 대신 방을 꿈꾸는 세대를 위한 주거권 논의 (청년복지)

-디폴트와 모라토리엄 그리고 공간의 위기 (지방정부의 몰락, 슬럼화)

-교통 문제와 무료 버스 운행 (교통)

- 탈토건의 정부체계 개편/생태적 세제개편

-주상복합의 비극 그리고 공간의 재구성

-생태적 삶과 국민들의 경제생활, 마케팅 사회의 해체.

하나하나가 만만치 않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숙제들인데, 이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해법도 나올 수 없음을, 그는 '토건주의'라는 키워드를 동원하여 아주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오늘, 한국경제와 사회의 문제를 핵심에 '토건주의'가 있다는 진단에 동감하는 이라면 설령 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꼭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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