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하나의 현장공사를 마무리졌다.
60평 수학전문학원 내장공사 전체. 열하루동안 마쳤다.

낮에 사장님이 물었다. "설계빼고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진행해보니, 보람이 있느냐"고. 이 맛에 인테리어 하는 거라고.
그냥, 웃었다. 물론, 보람이 있긴 있다.

모든 인간관계의 꼭대기에 고객-장사꾼이 놓이게 된 엿같은 시대, 무슨 일이건 '고객관점'이 중요하지 않겠냐마는
인테리어, 좀더 넓게 봐서 건축은 고객관점이 각별히 중요하다.
의식주의 바로 그 '주'라서 그러한데, 돈을 지불하는 발주자(건축주)뿐 아니라 실제 그 집에서 생활을 영위할 사람들이 얼마나 편안하고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
당장 돈 주는 사람이 '오케이'할 수는 있다. 집에 살아보기 전엔 삐까번쩍한 외양만이 눈에 들어오므로. 
하지만 사용자의 신체치수와 동선, 공간별 사용빈도, 공간의 규모 등을 면밀하게 고려한 기획이 없다면 사용자는 오래지 않아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그 인내가 한계를 넘는 순간 '부실공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려해야 할 것이 더 있다. 첫째는 사용자의 건강이다. 눈에 보기에도 좋고 이용하기에도 더없이 훌륭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채광과 환기, 사용하는 자재의 품질과 종류도 고려한 '몸을 살리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환경이다. 고려해야 할 존재는 사용자-그 건축물을 이용하는 사람-만이 아니다. 그 건축물이 위치하는 주변환경과의 조화도 신경써야 한다. 그 건축물의 존재와 이용방식이 얼마나 주변환경에 부담을 주는지를 따져야 한다.
이 두가지를 신경쓰지 않는 건축이란, 결국은 죄짓는 일이다. 사람을 잡는 일이고, 생명을 망치는 일이다.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노력을 하면 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문제는 포지셔닝일수도 있다. 건강과 환경을 모두 고려한 높은 품질의 건축은 결국 고비용으로 이어진다. 위의 신념대로 건축을 하려면 그런 고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고객을 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해야 한다. 우리 회사는 당근, 그렇지 못하다. 그저 트렌드를 좇는다. 하루벌어 하루 먹고살기힘든 '노가다'다.

이번 학원 인테리어, 발주자인 원장님은 흡족해 한다. 기능성이나 색상이나, 마감의 재질까지 대부분 만족스러워 한다. 나도 기분이 좋다. 그런데 따져볼 일이다. 60평짜리 학원에 학생 6명이 들어가는 코딱지만한 강의실 7개와 교사실, 원장실, 도서실까지 모두 10개로 방을 나누었다. 그런데 10개 방 가운데 여닫을 수 있는 창이 있는 방은 4개 뿐, 6개 방은 아예 창이 없다. 작은 건물이라 공조시설 따위도 없다.
공사 내내, 창이 있는 방 근처에서 일할 때는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지만 다른 방이나 복도에서는 몹시 힘들었다.
물론, 에어컨이 내일부터 가동이 될 것이므로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은 더위에 고생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환기와 채광의 포기로 장기간에 걸쳐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될 가능성은 있다. 이건,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이런방식의 설계와 공간기획의 또 하나의 문제는 아주 반 환경적이라는 점이다. 환기와 통풍이 되지 않으므로 온도와 습도의 조절은 오로지 냉난방기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9평형 벽걸이형 전기 냉난방기 11대가 들어갔다. 칸막이 구획자체의 문제로 과도한 에너지 사용을 필수로 하는 것부터 문제다. 또하나의 문제는 모조리 아주 값비싼 전기에너지 기기라는 점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용자의 건강'과 '자연환경'까지를 고려한 공간기획과 인테리어가 최선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돈이다. '우리 학원은 에너지 절약을 위해 전기먹는 하마 전기 냉난방기를 쓰지 않으니 학생들은 꼭 부채를 준비해서 오세요' 이렇게 말할 학원 경영자가 있기를 기대한다는 게 말이 되나.

한가지 문제 더. 요새 건설업계가 침체고 장기 불황을 달리고 있다는 말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지방보다 수도권이 좀더 심하고, 서울이나 경기보다 인천이 좀 더 일이 없다.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시장이 송영길로 바뀌며 인천시가 중앙정부의 토건예산을 끌어 올 능력이 없게 되었거나, 아니면 토건예산 사업자체를 대폭 줄인 것이다. 두가지 다가 맞을 것이다. 인천시민 전체, 대한민국 국민 전체, 지구 환경 전체를 포괄하는 시선으로 바라볼 때 '토건 마니아' 안상수보다야 송영길이 백배 나은 지도자다. 그러나 공사업에 종사하는 고만고만한 건설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는 지도자가 훌륭한 지도자다. 환경도 좋지만 까딱하다가는 나도 부도맞게 생긴 판국에, 관급공사를 대폭 줄여버린 민주당 인천시 지방정부가 이삐 보일리 만무하다.

해법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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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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