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하기 쉬운 오해 한가지. 환경파괴의 원흉은 과학기술에 기반한 현대 도시문명의 생산-소비체제라는 관점.
이런 관점에서 농업생산은 자칫 면책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왜냐하면 농업은 생명이므로. 화석연료를 소비하거나 유해한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도 수천년전부터 인간이 영위해왔던 것이므로.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세계사>는 이런 관점에 대한 통렬하게 문제를 던진다. 인류문명 발생의 초기 화려했던 서아시아의 문명은 관개농업을 활용한 생산성의 증대와 인구밀집, 뒤이은 물부족과 토지의 황폐화가 원인이었음을. 그리고 그러한 자기파괴적인 문명의 발달은 여전히 진행중임을.

영국의 과학전문저술가인 지은이가 아프리카에서 호주, 북미와 중국 등 전세계를 누비며 취재한 결과로 탄생한 이 책 <강의 죽음>은 '물'과 '농업'에 집중하여 인간의 문명이 처한 위기를 냉정하게 진단하고 있는 역작이다.

서른여섯개 지역을 다룬 서른 여섯꼭지 글 모음 가운데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랄 해 : 세상의 끝]이다.
아랄해를 알게 된 것은 재작년, 나름의 환경논문을 준비하면서다. 광활한 면적을 자랑하던 구 소련의 내해 아랄해가 30년 사이 그 면적이 3/1이하로 줄어든 충격적인 사진을 보며, 인간의 탐욕만을 앞세운 생산지상주의가 자연과 인간자체를 망가뜨린 것은 자본주의나 현실사회주의나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책 내용 메모.

아랄해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해변이 아름답고 물이 맑은 곳으로 명성이 높았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해 물의 양이 10분의1로 줄어들었고 지도와는 다르게 3개의 소금물 웅덩이가 되어버렸다. 해안가의 숲은 모두 사라졌고 물고기들도 오래전에 모두 죽었다.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풍격이 펼쳐진 것이다.

아랄해는 아무다리야 강과 시르다리야 강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여 오랜 세월동안 유지되어왔다. 오늘날 두 강은 아랄해에 닿기 전에 거의 말라버린다. 이유는 소련 시절, 기술자들이 이 물을 관개해 사막에 목화를 재배하기 시작한 때문이다.

1921년 레닌은 "그 어떤 것보다도 관개농업이 이 지역에 활기를 주어 과거를 청산하고 사회주의 국가로 확실하게 변모시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스탈린 통치하에서 이 지역은 소련의 국영 '집단 농장'으로 변신하여 수백만 헥타르의 밭에 수십억 그루 목화가 등장하게 된다. 유목민과 목동, 과수원을 일구던 농부들은 목화를 따는 노예처럼 동원되었고 반대는 용납되지 않았다. 1938년, 우즈베키스탄 총리가 '목화는 먹을 수 없다'고 호소했으나 그는 곧 '부르주아 국수주의'라는 명목으로 숙청되었다.
1960년대 이후 관개구역은 2배로 넓어져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중에 하나인 중앙아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관개구역이 되었다. 아랄해 지역 목화농업은 소련의 극적인 성공신화로 윤색되었다.
가장 건조한 곳에 가장 거대한 관개구역을 만드는 시도는 그러나 파멸로 이어진다. 밀에 비해 쌀은 대단히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며, 목화는 더 그렇다. 또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에 비해 관개를 통해 이루어지는 목화농사는 기존 목화밭에 비해 2배 이상의 물을 쏟아부어야 했다.
결정타를 날린 것은 1960년대에 건설된 카라쿰 운하. 아무다리야 강물 대부분은 세계 최장의 이 운하를 통해 1300km떨어진 사막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보내졌다.
아랄해가 죽음에 임박한 오늘날까지도 아랄해 인근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나라들은 세계에서 1인당 물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한다. 사막에 있는 이 나라들이!

오늘날 '인민목화'는 자취를 감췄다. 관개농업의 최대의 난제는 땅이 소금기를 머금는 것이다. 수로를 통해 땅위를 지나오는 동안 소금기를 머금게 되고, 그 물이 사용되는 농경지에 소금도 함께 나르기 때문이다. 땅이 소금기를 머금게 되면 수확량은 급감하게 된다.
관개농업은 결국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도임을 인정하기 보다 '기술자'들은 더 많은 물을 끌어와 소금기를 먼저 씻어내는 것으로 한해 농사를 시작한다. 물 낭비는 더욱 심해지고, 운하를 통해 물이 오는 동안 엄청난 양의 물은 또 증발되어버린다.

세계 1,2위의 물 소비량을 자랑하는 이들 나라들에서는 그러나 마실 물을 구하기 어렵다. 관개수로에 흐르는 물은 화학물질과 염분히 가득한 데다가 2001년에 가뭄이 극심했을 때는 그나마 완전히 말라버렸다. 강물이 마르면 지하수도 함께 마른다. 지하 대수층을 흐르는 물은 무한정한 것이 아니라 뽑아 올린만큼 다시 채워주어야 그 양을 유지하는 법이다. 관개농지에 지하에서 퍼올리는 물은 관개농지에서 스며나온 물이므로, 관개농지가 망가지면 지하수도 함께 사라진다.

아랄해가 크게 줄어들며 기후도 바뀌었다. 여름에 더 더워지고 겨울에 더 추워졌다. 비의 양도 줄었다. 물이 사라져 바닥이 드러난 바람에 흙먼지 바람이 새로운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다. 수십년 동안 오수를 통해 아랄해로 들어갔던 위험한 화학물질이 흙먼지와 함께 날리는 것이다. DDT같은 화학물질도 문제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소금이다. 소금은 바람에 날려 어디로든 들어간다. 채소에도, 어류와 조류의 체내에도. 토양에 있어 가장 심각한 비극은 소금이다. 그 땅의 사람들에게 소금은 독이다.
어머니들은 젖이 너무 짜 아기들이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70만 여성 중 97퍼센트가 빈혈을 앓고 있다. 임신과 출산중에 출산과다로 사망하는 임산부의 수가 무척 많다. 신생아의 87퍼센트가 빈혈에 걸린 채로 태어난다. 신생아 20명가운데 1명은 기형아로 태어난다. 평균수명은 64세에서 51세로 감소했다.

이 지역이 살아나려면 관개농지를 없애고 옛날 방식대로 돌아가야한다. 목화밭을 없애고 과수원을 일궈야 한다. 채소를 심고 가축을 길러야 한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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