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비슷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두 인물의 자서전을 함께 읽었다.

<스콧 니어링 자서전>은 2001년인가, 택시 운전할 때 책이 출간된 직후에 읽었다.
<조화로운 삶>을 먼저 접하고서 깊은 인상을 받은 터에, 그의 자서전이 나왔다는 광고를 보자마자 아무 망설임 없이 사들였던 기억이 난다.
자서전을 보며 꽤나 놀라웠던 점은, <조화로운 삶>에 기술한 그의 인생 후반부 이야기가 자서전에서도 제일 비중있게 다루어졌을 거라는 기대를 완전히 배반했다는 것이다.
책의 4분의 3은 그가 버몬트 숲속으로 떠나기 전까지, 필라델피아와 뉴욕을 주무대로 유능한 교수이자 저명한 언론가, 전투적인 공산주의자로 살아왔던 시기에 할애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자급농'이라는 대안적인 삶을 선택하기 전, 필연적으로 거쳐야 했던 인생의 과정은 무엇이었는지, 자급농으로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그의 사상과 철학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니어링의 의도적인 기획인것 같기도 하다.
8년만에 다시 읽으며 처음읽을 때와 견줬을 때 느낌이 다른점이 몇가지 있었다.
니어링은 '평화주의자'이자 '자연주의자', '공산주의자'이지 요사이 분류 기준에 집어 넣을 수 있는 '생태주의자'는 아니라는 점이 그 첫번째다.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었던 채식과 검약한 생활은 방종과 사치, 탐욕과 인간지배로 치닫는 자본주의 문명을 예리하게 성찰하고 비판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1883년에 태어난 그의 젊은 날은 1차 대전전까지의 이른바 '아름다운 시대'에 해당한다. 과학기술문명과 자본주의적 산업발전, 계몽주의 사상과 운동이 최고의 정점에 도달한 시기였다.
하지만 1차 대전을 겪은 후 뒤이은 애국주의 운동, 공산주의자에 대한 가차없는 탄압과 또다시 벌어진 세계대전과 마침내 핵무기 사용까지. 자기 파괴적인 자본주의 문명이 얼마나 큰 위험성을 가지고 있으며, 수미일관하게 그 체제 자체를 거부해온 그에게 허용될 수 있는 공적인 지위가 별로 없다는 것이 명백해지자 그는 자신의 신념을 더욱 극한까지 밀고가는 길을 선택한다. 바로 자본주의 시스템의 외부에서 살아가는 일이 그것이었다.
사회주의 운동의 다양한 흥망성쇠를 직접 체험하기에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미국에서 성장했으며, 매카시즘의 최대 희생자였던 탓이었을까. 스탈린주의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그의 평가는 자못 관대한 일면이 있다.
300년이 넘는 자본주의의 역사에 비하면 이제 갓 태어난 사회주의 국가가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필연적이며, '사회주의패배-전세계적인 자본주의화 - 전쟁과 공멸'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주의 국가들의 성취가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했던 그.

이에 비해 정통 유럽인이라 할 수 있는 러셀의 관점은 상당히 다르다. 훨씬 자유주의적이며 급진적이다.
러셀은 니어링보다 십여년 앞선 1872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 그는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원리>를 저술한 뛰어난 수학자였다. 동시에 <세계철학사>를 쓴 일급 철학자이기도 하며, 주위 인민들에 대한 끝없는 연민은 그를 격동의 시대 가장 급진적인 사회개혁 운동가로 이끌었다.
당시에는 온갖 비난을 다 뒤집어썼지만 아랑곳 없이 여성참정권 운동의 최선두에서 활동을 펼쳤고, 1차 대전시에는 당시 저명한 학자와 사회주의자 사이에서 거의 유일하고도 철저하게 반전운동을 펼쳐 결국 감옥행을 피하지 못하기도 했다.
억압적인 규율로써 인간을 자유롭거나 행복하게 한다는 것은 실현불가능한 환상이라는 확신을 가졌던 그는, 자신의 신념을 혁명직후 소련을 여행하면서 확고히 하고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두었다. 그의 말년 반핵운동에 전념하면서 자유진영과 동구사이를 넘나들며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니어링 자서전을 다시 읽으며, 자서전 본문보다 더 많은 분량의 편지/일기를 함께 묶은 러셀자서전을 읽으며 새롭게 깨닫는 것은 글쓰기의 가치다.
러셀의 경우는 '앎을 향한 끝없는 갈망'이 그의 삶에 중요한 나침반이 된 점도 있겠으나, 두 인물 모두 20세기 전반부의 격동하는 세계에 맞선 자신의 소명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중대한 행위로서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사랑에 대한 갈망'이 또하나 자신의 삶을 지탱했던 축이라고 솔직하게 밝히는 대철학자 러셀은 좀더 솔직해서,
그가 함께했던 여섯명의 여인과 나누었던 사랑, 정념, 열정과 질투, 분노와 기쁨 따위의 감정을 숨김없이 독자들앞에 내놓았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역량있는 개인의 역할도 있고, 혁명조직의 몫도 있다고 단순하게 나누어 볼 때,
두 인물은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데서 자신의 능력과 사명을 자각한 '개인'이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보여주는 대단히 상징적인 전범이 될 만하다.
세상이 그래도 인간과 자연이 살만한 것으로 발전해 나갈것이라는 낙관을 공유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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