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책을 읽거나 구입하는 경로가 다양해지고 나름 방식이 생기면서, '서지/출판/책읽기'따위로 분류되는 책들도 자연스레 더 관심을 두어 읽게 되었다. 이권우의 <호모부커스>, 박이문의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가 대표적이다.
책읽기의 길잡이 노릇을 해주는 이른바 '메타-책'이라고나 할까.
'전작주의자'라는 희한한 제목탓에 진작에 눈여겨 봐두었던 책을 이제야 다 읽었다. 이권우가 권하는 책 읽기 방식의 좋은 모범으로 지은이 조희봉의 '전작주의 책읽기'를 든 것이 미루어두었던 독서를 하게끔 만들었다.
큰 수확이었다. 요즘 읽은 책 가운데 지은이의 삶과 견해에 가장 많은 공감을 하는 텍스트였다.

학교는 모르겠고, 서울에 있는 캠퍼스 아마도 89학번쯤일 저자 조희봉은 그 시절 진지하게 세상을 이해하려는 젊은 축들이 대개 그러했듯, 당대를 풍미했던 '인문사회과학 세미나 붐'을 경험하며 본격적인 독서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정확히는 그 세미나 덕택이라기보다는, 그 세미나에 대한 반성떄문이란다.
저자기 기억하는 세미나는 '교양으로서의 인문학'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아주 획일적인 학습 프로그램이었다. 전공이나 개인적인 가치관에 관계없이 역사, 철학, 경제학 등에 걸친 고정된 커리큘럼을, 그것도 미리 상정한 결론에 이르도록 틀을 짜 놓고 일방적으로 그 틀에 따라 받아들이게끔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 말이다.

대학의 정규 수업속에서도, 학생운동 선배들과 함께 했던 세미나의 커리큘럼 속에서도 스승을 찾을 수 없었던 그가 책 수집가와 열독가를 거쳐 '전작주의자'에 이르게 된 데에는 그런 사정에 크게 연유했다고 한다.

나 또한 비슷한 길을 걸어온 것 같다. 온전히 나의 머리로 주조하지 않았던 실천프로그램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지적 갈증을 풀기 위해 단순하고 반복되는 세미나를 뛰어넘는 독서가 필요했다.

깊고 넓은 오랜 독서는 저자를 '책에 미친 놈'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책에 미친 놈이란 이런 놈이란다.

'어디 외출할 때면 책 한권을 꼭 들고 가야 하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데도 가방을 챙겨들고 나서는 사람'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서점에 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토요일이면 각종 신문에 실린 북 섹션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는 사람'
'인터넷 서점에서 수시로 새로운 책소식이나 가격할인 행사를 검색하는 사람'

책에 미친 그가 생각하는 좋은 책은 주(註)가 되는 책이라고 한다. 글의 주를 따라 다른 책으로 가면 또 다른 주가 나오고, 그 주를 따라가다 다른주를 다시 만나고, 그런 식으로 사슬처럼 이어지는 '내공부'를 해야 하나의 생각의 체계, 작은 '사상'을 만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의 주를 따라가본다.
『하늘의 문』, 전3권, 이윤기, 열린책들, 1994   - 중앙도서관 소장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고종석, 문학과지성사, 1996
『백년동안의 고독』, 안정효 역, 문학사상사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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