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부터 점찍어두었던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한참 순서를 기다린끝에 도서관에서 빌어 읽고 있다.
관심은 많이 두고 있으나, 흘끔거리는 수준을 넘지 못한 열쇳말들 - 지젝, 니체 - 에 지면을 많이 할애한 글 묶음이라, 처음부터 정직하게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눈에 띄는 섹션을 찾아서 널뛰기 하듯 읽기 시작했다. 애초에 블로그에 올린 글을 모아 만든 책이니, 이런 방식의 책읽기가 적합한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러시아 문학 전공자답게 러시아 문학에 대한 비평에서 시작하는 글 모음은 철학과 영화론을 거쳐 지젝과 번역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종횡무진' 시공을 가로지른다. 흥미로웠던 것은, 나 또한 주목하고 있는 세 명의 작가 - 김훈, 김규항, 고종속 - 에 대해 '문체론'에 입각한 비평을 시도하고 있는 점이었다. 김규항에 대해서는 조금더 지면을 넉넉히 할애하고 있는 바, 고종석과 김훈과는 달리 김규항은 대놓고 '출판운동'을 한다고 밝히고 있으며, 그런 자격을 가지고 이른바 오늘의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발언을 여러 지면을 통해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전을 읽으며, 여러번 곱씹었다가 더 파헤쳐 보기를 포기하고 넘겼던 부분은, 80년대의 근본주의적 정신을 견지하고 있는 소수를 제외한 사회운동 전체에 대한 김규항의 단호한 비판이었다.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최대 공헌자는 노골적으로 다중을 착취하는 자본가나 극우보수주의자들이라기보다 '시민운동'에 종사하며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언사를 남발하지만 결국은 체제를 무너뜨리는데에는 관심이 없는 '회색분자'들이라는 일관되고도 집요한 주장. 그의 주장과 관점은 예수 다시 읽기에도 그대로 살아 있는데, 예수의 '주타방'은 로마군정이라기보다는 '바리새인 제관들'이라는 독법이 그것이다.
로쟈는 이러한 근본주의적 시각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운다. "유사 좌파를 걸러내는 일이 어떻게 좌파 전체의 이익이 되는 것인지, 좌파를 전혀 지지않는 70%에 이르는 국민들 모두를 어떻게 할 것인지, 현재의 인간조건이 모두 극복되어야만 - 스탈린식 인간개조론! 스타하노프식 노력영웅! - 진정한 진보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닌지".

예수전이 출간되기 훨씬 전이었던, 로쟈가 이 글을 썼던 2004년(2006년?)에 그는 김규항의 모든 책을 다 읽었다고 한다.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는 독서방법론은 이권우가 권했던 '전작주의 독서' 다.

그의 전작, <B급 좌파>, <나는 왜 불온한가>를 한번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김규항의 문장론, 참고.. http://www.gyuhang.net/entry/나의-문장론

아울러, 김규항의 진보론이 왜 21세기판 인간개조론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지를 추적해가며 그가 예시로 들었던 러시아 문학전통의 두가지 사례,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1863)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역시 독서목록에 올려둔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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