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있는 독서안내서가 갖는 효용은 크다.
새로운 지식의 세계로 들어가려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나침반이 되어 준다는 표현은 그저 수사가 아닌것이다. 독자는 안내서를 참고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지식의 봉우리, 최고봉은 어디며 그를 향해 능선길로 바로 접어들지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는 정직하고 고된 길을 오를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 안내서를 지은 저자의 전문분야, 그 분야와 독자의 관심분야의 일치여부에 따라 의도하지 않게 관심있는 영역의 지식 내공을 순식간에 끌어올릴 수도 있는, 부수적인 재미도 쏠쏠하게 맛볼 수 있다.
내 경우 최고의 독서입문서는 장정일의 <공부>였다. 감각적이고 문학적 풍취가 높은 문장을 선호하는 취향도 작용했으리라. '직업을 독서'로 삼은 이들도 알게 되었다. '탐서주의자' 표정훈이 참으로 매력이 있었던 것은 그가 나보다 훨씬 높은 학문적 성취를 이룬 학자가 아닌 나랑 크게 다르지 않은 애서가, 열독가였기 때문이다.
그 시점이 한 3-4년 전이던가. 그 다음부터 출판계는 조금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논술이 대학입시 과목으로 포함이 되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으나 독서지도, 독서안내 관련서가 언제부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가 읽어야 할 책 100가지'류가 판을 치더니 개나 소나 다 '내 인생의 책'을 써내고 있었다.
질려버렸다. 하여, 요 사이 독서안내서류는 어지간하면 경계하는 편이었다.

한동안 멀리하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박이문 교수의 독서록은 오랫만에 만난 유익한 독서안내서였다.
마흔 편 독서록은 소개하는 책 한 권 당 3-4쪽을 넘기지 않는 짧은 글들이다. 장정일 <공부>와 같이 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통째로 몰입하여 읽게되는 그런 텍스트는 아니다. 그야말로 정직한 '서평모음'집이다.
하지만 양의 부족함은 소개되는 책들의 한결같은 진지함이 채워준다. 여든을 내다보는 노 철학자답게 그가 권하는 마흔 권의 책들은 가벼이 손에 쥘 수 있는 책들이 아니다.  1부 삶을 읽다, 2부 시대를 읽다, 3부 철학을 읽다.. 답답한 구성일수도, 도전해 보고 싶은 지적 흥분을 자극하는 구성일수도 있다.
철학과 문학을 두루 전공한 학자답게 지은이가 권하는 책들은 '3부 철학을 읽다'가 아니더라도 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철학자의 저서가 많았다. 하여 처음 부분은 즐거운 흥분과 재미로 시작했다가, 마무리로 갈 수록 대강대강 책장을 넘기고 말았다.


독서메모. 아니, 박이문 선생의 권고에 따른 공부 구상 메모.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레이몽크 / 문화과학사 / 전2권 (각 13,000원/14,000원) / 도서관 없음
-20대 후반, 스승 버트러셀을 놀라게한 천재철학자의 전기. 거액의 유산을 모두 기증하고 수도승과 같은 삶을 살다 두번 세계대전에도 모두 지원한 윤리적, 종교적 문제적 인간 비트겐슈타인.

『지하생활자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 / 문예출판사 / 7,000원 / 도서관 없음
마르크스가 유토피아를 주창했던 동시대, 개인의 실존적 문제에 천착했던 낭만주의자, 탈근대 지식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제작.

『왕필의 노자주』왕필 저, 임채우 역 / 한길사 / 25,000원 / 중앙도서관
서양 사상은 <성경>,플라톤 <대화록>, 데카르트 <방법서설>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듯, 동양사상은 공자의 논어, 노자의 <도덕경>이 필수 관문. 왕필은 1,800년전 중국의 학자로 수많은 노자 주석본 중 최고의 주석서를 쓴 인물로 평가받음. 한국에서 최초로 왕필 주석서를 번역한 책. 도덕경의 우리말 번역, 왕필의 노자도덕경주 우리말 번역을 모두 담고, 노장과 왕필의 생애에 대한 해설까지 포함한 텍스트.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 정재서 / 문학동네 / 18,000원 / 도서관없음.
동아시아 신화를 국내 학자가 본격 연구한 문학비평 이론서. 서양신화만을 동원했던 기존의 사대주의적 인문학 현실을 고발하고, 문화의 주체성에 대한 강한 주장을 담고 있는 책. '동아시아 상상력의 정체성'문제제기, 우리의 상상력이 동아시아의 전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임을 증명. 신화비평의 부활을 통해 '생태학적 문학비평'의 새로운 모델 제시.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빨개진다』 라이너 애틀링어 / 비룡소 / 12,000원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동화책.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읽고 토론하기 좋다.
"사람들이 너한테 정답이라고 내미는 것을 그냥 믿어 버려서는 안 돼. 언제나 네 스스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네 생각을 다듬어야 해. 그리고 네 믿음, 네가 옳다고 여기는 것, 네가 취하는 태도에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해."
"하지만 그것은 정말 힘든 일이에요"
"그래, 당연히 힘들지. 하지만 그런 게 바로 자유야."

『생명이란 무엇인가:정신과물질』 에르빈 슈뢰딩거 / 궁리 / 13,000원 / 중앙도서관
신비주의와 양자역학에 '양다리를 걸친'세계관을 보여준다. 생명이 물질로 환원된다는 동료 서양철학자들과는 달리, 사물이 사유의 속성으로 존재한다는 동양적 세계관을 지닌 저자의 통찰이 놀랍다.

『통섭』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코 / 열린책들 / 7500원 / 중앙도서관
이탈리아 대표 지성 움베르토 에코와 차기 교황으로 물망에 오르는 마르티니 추기경이 주고 받은 서신집. 주제는 '희망','생명','여성','신앙'이다. 궁극적인 문제 - 생과 사, 인간과 자연의 관계, 역사의 의미, 신념과 윤리의 궁극적 근거 등에 대해 성과 속의 관점에서 최고 지성들의 생각을 볼 수 있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정수복 / 생각의 나무 / 18,000원
오늘의 한국사회를 '문화적 문법-세계관'을 통해 파악하는 학술적 이론서이면서, 저자가 구상하는 이상적 근대화의 밑그림을 담은 이념적 선언서.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관한 실존적 물음에 대해 처음으로 시도되는 학술적이고 진지한 대답.

『다원주의 시대와 대안적 가치』정대현 / 이대출판부 / 28,000원 / 중앙도서관
다원주이 시대 여성주의적 가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논문. 서양 철학 전공자이면서, 독창적인 자신의 개성적 철학 이론을 세워 철학적 문제를 풀려고 시도한 역작. 이른바 성기성물철학(成己成物哲學)-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갈등을 극복하고 그것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제3의 철학 제시.

『예술의 종말 이후』, 아서 단토 / 미술문화 / 20,000원 / 중앙도서관
예술철학 분야 세계적 석학 아서 단토의 기념비적 역작.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예술의 의미 - 무엇인가가 육화된 의미 -를 분석함.

『우연과 필연』자크모노 / 범우사 / 8,000원
모든 현상의 작동을 설명하는 인과 법칙의 필연성 자체가 우연의 결과라는 독창적 주장 제시. 생명의 발생, 진화론, 과학적 세계관을 옹호하는 자연과학서이자 존재 일반, 자유의지, 과학적 지식의 본질 같은 관념적 존재에 대한 철학서.
"인간은 마침내 자기가 이전에 그 속에서 우연히 출현하였던 광대무변한 '우주'속에서 단지 홀로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운명이나 우리의 의무는 어느 곳에도 쓰여 있지 않다. 인간은 혼자 힘으로 '왕국'과 '암흑의 나락'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야 하는 것이다."

『철학과 굴뚝청소부』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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