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도 취향이 있고, 취향의 호오는 날로 분명해지는 것 같다, 입맛이 그런것처럼.
희디흰 팔뚝에 돋은 파아란 정맥이 미세하게 떨리는 움직임마저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신경숙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가 좋았다.
비슷한 감각적 문체라도 중언부언하고 자신감이 없어보이는 이지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밀하게 직조된 페르시아 산 견직물처럼 꽉 짜인 플롯에 개성적인 인물의 형상화에 성공하고,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녹여내는, 요사이 내가 가장 매력을 느끼는 글장이는 김연수다.
하지만 김훈의 건조하고 정직한 단문도 매력적이다.

요컨대, 내 입맛에 맞아떨어져 시원시원하게 잘 읽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같이 빌린 책들 가운데, <메멘토 모리>가 후자라면,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는 단연코 전자해 해당한다.
정재영이라, 40줄이 되도록 본업은 기자였다니 철학 공부 바닥에서 오래 놀았던 이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기획이 참신하고 적당한 깊이와 적당한 재미를 동시에 취하는데 성공한 문장들이 맛스럽게 다가오며, 조잘 조잘 이야기의 맥을 놓치지 않는 솜씨가 경쾌하다.

탈레스와 소크라테스부터 비트겐슈타인과 하버마스까지, 2000년을 넘는 긴 시간에 걸쳐 흥망성쇠를 밟아온 유럽 철학의 이야기를 도시이야기와 버무려 재미있게 풀어놓은 책, 의외로 신나고 즐겁게 읽었다.

[독후메모]
* 포스트 모더니즘, 근대의 세계관에 대한 반성과 성찰
<계몽의 변증법>,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 사회사적 관점으로 근대 세계관의 위험성 경고
<역사란 무엇인가>, E.H.카, 근대 역사관에 물음표를 던지다.

* 르네상스 철학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 부르크하트, '예술사'학문분야의 시조

매끈한 주석본보다는 거친 원전에 도전하라는 것이 저자 정재영 씨의 권고지만,
서양철학사의 주저에 도전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결국, 칸트,니체,헤겔,플라톤, 아퀴나스 등을 빼고 나니 별 메모랄 것도 없는 책 몇 권 밖에 안남았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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