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6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충격이었다. 말년에 자식들 고생시킬까 두려워, 내가 기억하는 그의 평생동안 거의 단 하루도 운동을 거르지 않았던 건강체질 아버지였다. 감기(인줄로만 알았던 두통)를 한달 앓던 끝에 제대로 걷지 못하시더니, 시한부 판정 받고 꼭 석달 후에 돌아가셨다. 잘 믿어지지 않았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마지막 석달 가운데 절반 이상을 중환자실에 계셨다.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중환자실이란, 아주 위독한 환자들을 위한 특별한 처치와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거기를 거쳐 일반병실로 돌아오며 회복하는 곳으로만 알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란걸. 중환자실이란, 현대판 고려장이다.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다. 그래도 (아마 다수의) 가족들은 - 병원에 입원한 가족의 상태가 아주 나쁘고, 돈이 없는 경우라면 - 중환자실에 머무를 수 있기를 바랄거다. 왜냐하면, 간병의 부담을 확 줄여주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하루 두번(세번?) 30분씩 허용되는 면회시간 외에는 일가족이라도 환자옆에 다가갈 수조차 없다. 24시간을 간호사가 모니터링 해준다. 정부가 지정한 6대 중증질환에 해당하면 병실료 중 90%가 건강보험에서 지원되므로 병원비 부담조차 없다. 물론, 여기까진 철저히 가족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환자의 생존이 서서히 부담으로 남은 가족들을 옥죄기 시작하는 순간의 가족들에게.

 

고통스럽지만 내가 그걸 마음속으로 바랐다. 아버지가 일반 병실로 가시면 대안이 별로 없었다. 이미 살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것으로 판정이 났을 뿐만 아니라, 아내와 자식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놓아버린 아버지의 처지에서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다. 한달 여, 일반 병실에 있는 동안은 주로 어머니가 함께 계셨고, 나도 며칠은 아버지 곁에서 용변 뒤처리를 도와드리며 잠을 자기도 했다. 아버지의 인생과 내 삶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친척들이 말씀하셨다. "너네 아버지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식들을 위했구나. 자식 부담 안주려 꼭 석달만 드러누워서 친척이랑 친구들 인사 골고루 하고 가셨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괴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가장 큰 괴로움은 당신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할 순간을 갖지 못한 일이다. 남은 가족들에게 어떤 뜻을 남기고 싶어하셨는지도 말씀하지 못하셨다. 인간의 역사가 아버지에서 나로, 나에게서 내 아이로 이어지겠지만 그건 커다란 계기를 만나지 못한다면 어렴풋하게만 다가오는 관념일 뿐이다.

상냥하게 말씀을 잘 하셔서 늘 사람이 주변에 따랐던 아버지셨다. 심성이 곱고 남을 돕는 일을 즐기셔서 서울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고향 동생들을 수도 없이 품어주셨던 아버지셨다. 자식과 일가를 건사하느라 평생의 미루어왔던 꿈, '작가'에 도전하려 마지막 삼년 동안 시 100편을 지으셨던 아버지. '글'과 '말'에 민감하셨던 아버지다. 내가 그 피를 이어받은 거겠지.

그 아버지가 말로도, 글로도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정리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는 생각을 하니, 또다시 눈물이 난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 걱정은 어머니다. 아마도 평생 강직한 종교인으로 살아온 정신의 힘일터, 놀랍게도 건강하고 밝게 일하며, 자식과 손주들을 챙기며 이웃을 챙기며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 혼자서.

당장은 아니지만 곧 두려운 시간이 닥칠 것이다. 건강하게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지금과, 임종이 가까와진 때에 병원에서 맞을 마지막 순간 사이의 시간이 그것이다. 어머니가 어느날 균형을 잃고 자꾸 넘어지시게 되거나 모르던 병증이 생겨나, 타인의 도움이 있어야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때가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현실적인 미래는 1) 재가 장기요양서비스를 몇 년 받은 후      2) 요양원 / 요양병원 으로 가서 지내시다    3) 2번 병원과 연계된 큰 병원에서 숨을 거두시는 코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답이 아니다. 귀농을 생각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어머니였다. 전희식의 <똥꽃>에서 큰 영감을 얻은 터였다. 어머니도 내 생각을 아신다.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당당하고 쓸모있게 마무리하고 싶으실 터이다.

아버지 사후, 호스피스 병원에 대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굳이 생존의 시간을 조금 연장하는 목적의 연명치료는 거부하는 것이 옳다는 점에 대해서 어머니와 내 생각이 일치했다. 약속했다. 그 순간이 오면 호스피스 병원으로 보내드리겠다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놀랍게도 이런 내 모든 고민에 대해서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미국의 의사로서 저자는 '완화치료'라는 개념이 현대의 의료시스템에 반드시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말기암환자에 대해 고통만 가득한 생이 남겨질 것이 분명해 보여도 종양제거를 위한 수술과 고통스런 방사선치료만을 권하는 동료의사들의 일반화된 처방과 진료가 맞지 않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호스피스케어', '어시스티드 리빙 시설'과 같은 혁신적인 완화치료 서비스와 요양주거 시도를 시도한 많은 선구자들의 사례를 풍부하게 들며, 내가 고민했던 것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대안적인 접근이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해, 인간다운 죽음을 선택하기 위해 분투했던 많은 선배인간들과 조우한 결과, 그는 인생의 의미에 대한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조망할 때는 단순히 매 순간을 평균내서 평가하지 않는다. 어차피 삶은 대부분 잠자는 시간을 포함해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간다. 인간에게 삶이 의미있는 까닭은 그것이 한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온전한 하나의 단위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 전체적인 구도는 의미 있는 순간들, 즉 무슨 일인가 일어났던 순간들이 모여서 결정된다. ... 경험하는 자아-순간에 몰입하는 자아-와 달리 기억하는 자아는 기쁨의 정점이나 비참함의 심연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인식하려 한다. 그리고 이는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끝나는지에 따라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

 

"아버지는 자신이 직면한 한계들을 다루기 위해 그것들을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려 애썼다. 자신의 상황 때문에 때로 우울해질지언정, 결코 실제 상황보다 더 좋은 척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인생을 짧고, 한 사람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아주 작다는 걸 이해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또 자기 자신을 역사의 한 고리로 생각했다. 나는 넘실거리는 강물 위에서 수많은 세대가 손을 맞잡고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그곳에 데려감으로써 자신이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의 일부분이고, 우리도 그렇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멋진 책이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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