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권유로 읽게 된 책. 수유+너머R에서 글쓰기 강좌를 운영하는 저자가 글쓰기의 의미와 실제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살려 풀어썼다. 올해 만난 책 가운데 첫 손에 꼽을 만하다. 문장도 훌륭했지만 살아가는 일과 읽고 쓰는 일에 대한 저자의 통찰과 사유에 무척이나 공감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광고판의 현란한 문구들과 TV에서 무작위로 유포하는 자막들은 유혹한다. 그것은 하나같이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삶, 경쟁과 출세와 소비를 촉구하고 재생산하는 집요한 언어였다. 삶의 가치라는 고귀한 물음을 봉쇄하고 주변에 있는 타인의 삶에 등 돌리게 하는 쓸쓸한 말들이었다...... 그러니까 세상을 바꿔야 할 이유가 없는 자들의 언어로는 이 세상의 모순과 불행을 설명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생각을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깨달았다. 나는 이미 어떤 가치 체계에 휘말려 있었고, 그것은 내 삶을 배려하지 않았음을.

나만의 언어 발명하기. 이것이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까닭이다.   (16쪽)

 

책과 말과 글을 동료들과 나누는 쏠쏠한 기쁨, 아니 심오한 쾌락을 알게 되었다. 직업적 글쓰기와 본래적 글쓰기의 두 트랙을 오가며 허둥지둥 달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하나로 합쳐지는 선순환 구조에 들어와 있었다... 동료들과 삶을 말로 풀어내고, 말을 글로 엮어보고, 글로 삶을 궁구하며 생겨난 삶의 마법이다.

딱 이만큼이다. 생의 모든 계기가 그렇듯이 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 삶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며 더 나빠져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려 애쓰는 '삶의 옹호자'가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42쪽)

 

약자는 달리 약자가 아니다.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할 때 누구나 약자다. 피해자의 언어가 필요하다. 자기 언어가 없으면 삶의 지분도 줄어든다.  (68쪽)

 

"우리는 불행처럼 우리를 자극하는 책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아주 깊이 상처를 남기는 책이 필요하다. 이런 책들은 우리가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느껴지고,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숲으로 추방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자살처럼 느껴질 것이다.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 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 같은 것이어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믿고 있다."  (홍대 앞 유명 북카페에도 써 있다는 카프카의 말) 

나는 학인들에게 책을 읽되 진실한 독해를 당부했다. 여기서 진실함이란 사실에 부합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곧 책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저자의 의도에 맞추려 낑낑대지 말고 자기 삶의 구체적인 정황을 떠올리고 접목시키면서 '주관적'으로 읽어달라고 했다.   (83쪽)

 

모든 글에는 하나의 메시지, 하나의 질문이 담겨 있어야 한다. 문제의식이 없는 글은 요란한 빈수레와 다름없다. 글이란 또다른 생각(글)을 불러오는 대화와 소통 수단이어야 한다. 울림이 없는 글은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어야 좋은 글이다. 그러니 글쓰기 전에 스스로를 설득해야 한다. '이 글을 통해 나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129쪽)

 

글에는 적어도 세 가지 중 하나는 담겨야 한다. 인식적 가치, 정서적 가치, 미적 가치. 곧 새로운 지식을 주거나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거나 감정을 건드리거나.  (135쪽)

 

계몽, 곧 도덕적 마무리는 위험하다. 상황을 단순화시켜버린다. 감정을 평준화한다.    (174쪽)

 

관계란 기억의 교환이다. 다른 사람에게 평범한 기억밖에는 만들어줄 수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의 기억을 갖지 못하는 인간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 황현산 -    (188쪽)

 

 

 

나도 따라 읽고 싶어 진, <<글쓰기 수업 시간에 읽은 책들>>

 

<남해 금산>,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1986

<마징가 계보학> 권혁웅, 창비, 2005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문학과지성사, 1989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작가정신, 2011

 

산문

<나는 왜 쓰는가-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10

<말> 사르트르, 민음사, 2008

<삼십세> 잉에보르크 바흐만, 문예출판사, 1995

<소망 없는 불행> 페터 한트케, 2002

 

르포

<4천원 인생-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안수찬 외, 한겨레출판, 2010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10

 

인문사회

<김영민의 공부론> 샘터, 2010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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