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것

독서일지 2015. 2. 3. 21:05

먹는다는 것




내 안을 허락한다는 것.

너에게 내 몸을 열고 싶다는 것 내 혀와 이빨과 목구멍과 대장과 항문을 열어준다는 것 그렇게 음탕한 생각.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니고 싶다는 것 지금의 죽음이고 싶은 것 다른 나이고 싶다는 것 사랑을 느낀다는 것.

너를 내 안에 넣고 싶다는 것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 너이고 싶다는 생각 네가 아닌 나를 더는 견디지 않겠다는 의욕.

너를 먹네

포충식물처럼 끈끈하게, 세포 하나하나까지 활짝 열어 너를 맞네 세포 하나하나까지 너에게 내주네.

그러므로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일 모든 구애가 그렇듯이

밥이건 고기건 사람이건

먹는다는 것은 먹힌다는 것 죽음처럼 아찔한 것 길고 황홀한 키스 먹는다는 것은 갖고 싶다는 것 새 자동차를 장화를 장미를 새끼 고양이를 향해 눈이 빛나는 것 같이 있고 싶다는 것 한 몸이 되고 싶다는 것.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랜 식욕의 역사

몸 너머 영혼 속에까지 너를 들이고 싶은 것 네가 되겠다는 것 기어이

먹는다는 것은.



   - 김사인 <어린 당나귀 곁에서> 中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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