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가 타인 속에서 결코 자신밖에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사막 속에 홀로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린 미쳐버릴 것이다..... 내 애원컨데, 나 자신의 저 너머를 보고, 누군가를 만나는 기회가 오기를 운명에게 간청한다. (208쪽)

 

난 문법이 아름다움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말하거나 읽거나 쓸 때,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었거나 그런 문장을 읽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문법을 공부하는다는 것은 언어의 껍질을 벗기는 것이고, 언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바라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언어의 벌거벗은 몸을 보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경이로움이다.... 단어에도 여러 가지 특성이 있고, 그것을 알아야 각각의 용례와 그에 부합하는 것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난 황홀하다. (229쪽)

 

아름다움, 그것은 적합성이다...... 우리 모두는 내부에 적합한 것에 대한 앎이라는 닻을 내리고 있다. 바로 그 앎이 존재의 매 순간마다 우리에게 그 순간의 질을 포착할 수 있게 해주며, 또한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희귀한 순간에는 적절한 강도로 그것들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238쪽)

 

그는 찬성이나 반대를 노리는 대신, "넌 누구니? 나랑 얘기하고 싶니? 너랑 있으면 정말 즐거워!"라고 말하듯 날 바라보았다. 난 바로 이게 예절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건 자신이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태도라고 생각한다. (245쪽)

 

나무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는 엄청난 인간성, 최초의 경탄에 대한 무한한 향수, 그리고 자연 속에서의 미미한 자신을 느끼는 강렬함, 그런 것들이 있다. 나무들, 초연한 위엄을 가진 나무들을. 우리가 나무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을 상기해보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가소로운 존재이고 지구의 '표면'에서 우글거리는 추한 기생물인지를 알 수 있는 동시에 우리에게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건 우리에겐 우리가 만들지 않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246쪽)

 

자식은 자기 자신과 대면해야 하는 그 고통스러운 작업을 미루도록 도와준다. 텔레비전은 우리의 눈을 농락하면서 삶의 의미의 위대한 작업에서 정신을 날려버린다. 신은 포유로서의 공포와 언젠가 우리의 즐거움이 끝나리라는 참을 수 없는 전망을 진정시켜준다. 이처럼 나는 부조리의 세계적 인식을 아둔하게 만드는 미래도, 후손도, 허구도 없이, 종언에 대한 확신과 공허함에 대한 예상 속에서, 편리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255쪽)

 

삶의 흐름은 노래 속에 자취를 감추고, 문득 우애, 깊은 연대감, 심지어 사랑의 느낌마저 생겨나게 하고, 완벽한 조화속에서 일상의 추함을 흐릿하게 만든다. 난 울고 싶고, 온통 목이 잠기고, 가능한한 참으려고 하지만, 몇 번이나 한계에 도달했다.... 마침내 나는 진정한 세계의 움직임은 결국 노래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268쪽)

 

예술은 우리의 감동에 형태를 부여하고, 그 감동을 가시화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특별한 형태를 통해 인간적인 정서의 보편성을 구현할 수 있는, 모든 작품이 보유하고 있는 영원성이라는 낙관을 찍는다.

끝없이 욕망한다는 것은 너무도 지치는 일이기 때문에... 이내 우리는 찾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을 갈망하고, 결코 시작되지도 끝나지도 않을 어떤 행복한 상태, 아름다움이 더 이상 목적이나 계획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 자체가 되는 행복한 상태를 꿈꾼다. 이 상태,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295쪽)

 

손을 빌려다오, 사랑하는 영혼이여,

어둠이 나를 감싸네

네 가슴에 나를 쉬게 해주오.

나 이 땅에 묻힐 때

내 잘못 더 이상 당신 가슴

흔들지 않기를.

나를 기억해주오, 나를 기억해주오.

그러나 아! 내 운명은 잊어주오.    - <디오와 아이네아스> 중 디도의 죽음

 

"그 여자들이 당신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어떤 환경에 있다 해도 당신을 알아볼 거예요." (447쪽)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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