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고대자퇴녀' 김예슬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 또래야 익숙하지만 요즘 젊은친구들도? 만 싶은 대자보에 빼곡히,
자신이 왜 대학을 거부하고자 하는지, 그것도 이렇게 공개적인 선언문까지 써가면서
작은 외침을 질러내며 잘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었다. 그것도 현직 대통령의 모교, 잘나가는 SKY, 고려대를.
흠흠.. 요새 젊은 친구들, 다 죽은건 아니었구나. 대단하고 멋지다. 생각했을 게다.
잊고지내다 우연히 읽게 된 서평집에서 김예슬씨가 그 선언문에 담긴 뒷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먼저 읽고 이번에 대학에 간 조카딸에게 권하면 좋을 것 같아 한권 사서 읽었다.
멋지다. 그의 선배인 80년대 학번 대학생들은 시대의 어둠을 환히 비추고자 스스로 불타오르는 횃불이 되고자 했고,
시대의 적들을 향해 날아가는 돌아오지 않는 불화살이 되고자 했었다.
김예슬은 한 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당돌하게도 아니 당당하게도, '진짜 래디컬이란 무어냐'고 따져묻는다.
그리고 답한다.
래디컬은 근원적이라는 말이다. 사태를 전체적으로 보고, 문제의 원인을 뿌리까지 파고들어가 그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려는 태도이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사회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과 실천 전반에 대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67억 인류사회와 세계의 다양한 토박이 마을 전통문화와 임박한 생태위기에 대한 시야까지를 가지고, 현재의 삶과 사회를 물질구조만이 아니라 생활문화와 감성과 영성까지 품어내는 뿌리 깊은 혁명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무엇보다 사람이, 진보적 자기신념을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 자체가 먼저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김예슬씨의 눈에 비친 진보는 이렇다.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경쟁에 매달리고 있다. 김예슬이 보기에 그 이유는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삶의 내용물 수준에서 보자면 보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나, 충분히 래디컬한가? 나는 자기신념을 삶으로 살아내는, '먼저 그러한' 삶인가? 되묻게된다.
이런 놀라운 인식을 갖게 된 계기는 스무살에 만난 박노해 시인과의 만남이었다.
시인은 그와 스무살 그들에게 화두를 던진다. "그대는 진리를 알려고 하는가, 진리를 살려고 하는가. 그대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가, 길을 걸으려고 하는가. 그대를 사랑을 배우려고 하는가, 사랑을 하려고 하는가." 이 말이 김예슬씨의 온 존재를 흔들어놓았다고 한다. 시작이었다.
아직 나어린 그, 살인적인 제도교육과 입시지옥, 스펙경쟁과 청년실업으로 상징되는 이 시대의 가장 첨예한 모순속에서 상처받았지만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여 그가 도달한 깨달음은 날카롭다.
"우리, 가슴 뛰지 않는다고 가슴치지 말자. 원래부터 잘 뛰고 있던 가슴, 가슴 아프고 가슴 시린 그 모든 가슴이 솜 좀 쉬게 열어 두자. 머리는 계산이지만, 가슴은 직관이기에.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머리를 잠시 멈추고 진정으로 내 가슴이 부르짖고 있는 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여 보자." (95쪽)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사십시오. ... 당신은 결코 아이의 내밀한 영혼을, 아이만의 상처와 비밀을, 그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부모 앞에서 태연히 웃고 있는 고뇌를 알 수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그저 뜨거운 침묵으로 지켜보고 격려해주기만 하면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부모님이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서툴지만 자기 생각대로 살고 책임지겠다는 자녀의 저항에 기꺼이 져주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101쪽)
욕망의 제공자와 욕망의 대상이 끌어당기는 힘은 너무나 강력하다. 그래서 그로부터 진정 빠져 나오기를 원한다면, 진정한 자신을 찾기를 원한다면, 지금의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마저도 실은 '주어진 꿈'이 아닌지, '오염된 꿈'이 아닌지. 한 번 크게 의심하고 전체 속에서 떨어져 거리를 두고 보아야만 한다. (109쪽)
중간은 없었다. 돈에서 시작할 것인가, 삶에서 시작할 것인가. 나는 지금까지의 나의 꿈과 욕망과 열정, 아니 씨앗부터 오염된 나의 전부를 던지기로 했다... 암처럼 내 안에 들어 앉은 오염된 꿈을 던져버리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직업의 틀로부터 자유로와지고 나는 아주 기쁘게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10쪽)
이 책으로 인해 읽고 싶어지게 된 책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르네 지라르,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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