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곳 :
제대로 된 혁명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 D.H 로렌스
당신은 늘 내 가슴을 뛰게 합니다.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 왜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밝은 피부, 긴 손가락, 입술, 푸른색이 도는 눈동자, 목젖이 보일 만큼 깔깔 웃는 웃음들, 한 옥타브 높은 명랑한 목소리, 늘 볼 때마다 아찔한 현기증이 나는 당신의 뒷모습, 당신이 당신임을 증명하는 어떤 향기들, 당신이 당신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살 저 너머에 있는, 갈비뼈 아래에 숨어 있는, 결코 만질 수 없는 당신의 마음을 보았다고 말해도 그 사랑은 다 해명되지 않습니다. 인색한 고리대금업자 같은 이 세상에게 몸을 주고 무력하게 피를 빨리다가, 우연의 운명으로 당신을 만나고, 당신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잉여로서가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해. 내 시간, 열정들, 피와 살들로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나는 이 사랑의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150쪽)
‘너’와 나의 만남은 은혜로 이루어진다 - 찾아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너’를 향해 저 근원어를 말하는 것은 나의 존재를 기울인 행위요, 나의 본질 행위다.
‘너’는 나와 만난다. 그러나 ‘너’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들어서는 것은 나다. 그러므로 관계란 택함을 받는 것인 동시에 택하는 것이며, 피동인 동시에 능동이다. 그것은 마치 온 존재를 기울인 능동적 행위에서는 모든 부분적인 행위가 정지되고, 그리하여 모든 - 한갓 부분적인 행위의 한계에 근거를 둔 - 행위감각이 정지되기 때문에 그 행위의 능동성이 수동과 비슷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근원 ‘나-너’는 오직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말해질 수 있다. 온 존재에로 모아지고 녹아지는 것은 결코 나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너로 인하여 ‘나’가 된다. ‘나’가 되면서 ‘나’는 ‘너’라고 말한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 마르틴 부버,≪나와 너≫ (244쪽,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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