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아니지만, 나는 2009년 10월에 사회복지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어느날 국정원 직원임을 밝힌 한통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 전화가 이 MB정부의 민간인 사찰활동의 일환이었다.

왜 그 때 나는 그 사실을 좀더 적극적으로 남들에게 알리지 못했을까 아쉽다. 아마도, 뼈속깊이 아로새겨진 '기관원'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심이 작동한게 아니었을까.

내용은 이렇다.


나는 당시, 아래와 같은 행사를 준비하던 실무책임자였다.




내가 재직하던 일터인 '나눔과함께'가 주관하고 인천시가 후원하는 자원봉사자 양성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제목에도 MB정부의 입맛을 고려하여 '녹색성장시대'를 강조하는 표현을 부러 집어넣었다. 한마디로 관공서에서 아주 좋아할만한, 체제를 위협하는 것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말랑말랑한'행사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준비했기 떄문에 어느날 내게 걸려온 국정원의 전화는, 나를 엄청나게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여보세요~ 김OO 사무국장님 맞으십니까?"

"예. 그런데요. 누구시죠?"

"여기 국정원인데요. 사무국장님 박원순 변호사하고 혹시 어떤 사이 되십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11월 5일날 박변호사 초청강연하잖아요. 박변호사를 인천까지 모셨는데, 학교 선후배라거나 무슨 모임을 같이 한다던가, 그런 관계가 전에 있었기 때문에 모실수 있었던 게 아니냔 말입니다"

아차 싶었다. 당시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는 국가정보원이 그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 한참 뉴스의 주목을 받던 시기였는데, 행사 내용이 워낙 밋밋했던 지라 그점에 대해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박원순씨가 정치를 결심하기도 한참 전 시절이었다. 아무리 한 개인이라도, 국정원에 감히 맞장을 뜨던 그를 정권은 예의주시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움직이는 조직이 있는지, 그게 누구인지 사정기관은 눈에 불을켜고 들여다보던 시점이었던 것이다.

주목하고 있던 박원순이 인천에 가서 강연을 하려하고, 그걸 주선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있다면 일단 그들의 사찰 리스트에 올려놓는 방식이었다.

국정원이 '나 국정원이요~' 밝힌 것도 의아했고 몹시 불쾌했지만 한편 무서운 마음도 들었으므로, 나는 아주 공식적인 접촉만으로 행사를 주선했음을 애써 강조해 대답했다.

"박원순씨는 우리같은 사회복지사 사이에선 아주 유명하고 훌륭한 분으로 인정받는 지도자입니다, 나눔교육에 나눔전도사 박원순 부르는게 뭐 잘못이냐" 그런식으로 대답을 했고, 나는 빨리 이 찝찝하고 겁나는 전화를 끊고만 싶었다.

그런데,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다.

"아, 알았구요. 김국장님, 사회복지사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만..."

"저도 사회복지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종종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가끔 만나서 식사라도 하고 싶은데 괜찮겠지요?"

어라? 순간 가슴이 쿵당쿵당 뛰었다. '국정원 직원이 나를 가끔 만나서 밥을 먹자구? 나 같은 찌끄레기 사회복지사에 그렇게 공을 들일 필요는 없을테고, 박원순이 그렇게 거물이었나?'

무서운 마음은 더 커졌지만, 한편으로는 진짜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알기로는 국가정보원의 국내정보 수집활동은 불법인데, 이것들이 감히, 나를 물로보고 있는거야? 나도 이 자들의 정보를 좀 챙겨서 맞대응을 해보지 못할 건 또 뭐가 있으랴, 하는 마음도 생겼다. 만나겠다고 했다. 연락달라고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박원순 강연은 그다지 성황리에 개최되지는 못했다. 300명 목표에 50명 참석했다. 그 때문인지 그 국정원직원으로부터 또다시 연락은 오지 않았다. MB정부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박원순에 대한 공격의 불똥이 혹시라도 내가 속한 일터에까지 튀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던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다시 연락이 안온것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08년 촛불에 참석했던 단체들이 줄줄이 보조금이 끊기던 시절이어서 더 그런마음이었다.


오늘 아침, 김제동을 사찰했던 기관이 국정원이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보니 내가 겪었던 3년전 그 일도, 바로 MB정부 민간인 사찰의 하나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 직장이었던 '나눔과함께'는 전혀 유명하지 않은 작은 사회복지기관이었으므로, 국정원이 내 핸드폰으로 직접 전화를 했다는 건 '박원순'을 키워드로 아주 촘촘하게 사찰망을 상시 가동했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요주의 인물 박원순'과 관계가 있어보인다는 짐작만으로 국정원은 일개 사회복지사를 정기적으로 사찰하려는 시도까지 했다.

묻고 싶다. 국정원은 지금도 유명하거나 정권에 쓴소리하는 이라면, 아무리 국가 보조를 많이 받는 사회복지사라도 상시 사찰을 하고 있는지.

MB정권의 사찰의 촉수가 나같은 필부에게까지 미쳤을 정도라면, 도대체 이 정부는 몇명의 국민을 상대로 이런 짓거리를 했단 말인가. 소름이끼치고 욕지기가 치민다. 이들은 기어코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받고 말 것이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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