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입문 이후 읽은 책 몇 권 가운데 가장 좋았다. 우리의 삶에서 도대체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데 충실하다. 르 코르뷔지에를 비롯하여 20세기 현대건축을 일궈낸 세계적 건축가들과 그들이 탄생시킨 불멸의 건축작품들에 대한 이야기 모음이다. 저자가 선별해 정리한 열 여섯개의 건축가-작품에 대한 순례기는 모두 이 순간, 이 곳에 (now-here)의 문제에 대한 충실한 해답지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지은이가 살아온 이야기로 책은 시작한다. 의도했던 바였을까. 이렇게 구성한 덕택에  이 책은 건축을 이해하고자 시도하는 나같은 초심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된다.

그의 인상적인 머리말 메모.

건축이란 무엇인가... 좋은 건축은 좋은 삶을 만들지만 나쁜 건축은 나쁜 삶을 만들수 밖에 없다..

일본인이 만든 건축(建築)이라는 단어는 건축을 설명하는데 적합한 말이 아니다. 세우고 올린다는 물리적 운동만을 뜻하는 이 단어로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는 건축의 오묘함을 설명하지 못한다. .... 우리에게는 건축이라는 말 대신 참 좋은 단어가 있었다. 한자말이기는 하지만 영조()가 그것이다. '지어서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다. 집은 세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다. 밥을 짓고 농사를 짓고 시를 짓듯이 집은 지어서 만드는 것이다. 재료를 가지고 생각과 뜻과 마음을 통하여 전혀 다른 결과로 변화시켜 나타내는 것이 짓는 것이다. 즉 건축은 사는 방법을 만드는 것이다.

평면도는 본다고 하지 않고 읽는다고 해야 정확한 말이 된다. 평면도 속에 적혀 있는 건축가의 사유를 읽어내야 그 평면도에 표기된 삶의 조직이 이해가 된다. 건축가는 그림에 소질이 있어야 될 이유가 없다. 어떻게 보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문학적 소질이지 예술적 기예가 결코 아니다.

건축을 굳이 다른 학문의 분류에 넣으려 한다면 공학이나 예술이라기 보다는 인문학에 가깝다. 문학적 상상력과 논리력, 역사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사물에 대한 사유의 힘이 이웃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속에 작업해야 하는 건축가에게는 필수불가결한 도구들이기 때문이다.

좋은 건축이란 어떻게 지어야 하나.

첫째 합목적적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의사당이 봉건적 건물 형식이 되는게 나쁜 예다.

두번째,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 건축은 대단한 기억장치여서, 시대의 거울이라고 일컫는다. 19세기말 유럽의 건축과 예술의 지식인들이 모여 그 시대의 위기에 답했던 세제션(Sezession) 운동의 신념은 "그 시대에 그 예술을, 그 예술에 그 자유를!"이었다.

세째, 건축과 장소의 관계가 바르게 반영되어야 한다. 조각이나 그림은 이동이 가능하지만 건축은 반드시 땅 위에 선다. 공간적, 시간적 성격과 지리적, 역사적 컨텍스트를 가진 땅을 '장소'라 부른다. 장소의 성격을 제대로 반영한 건축이 바른 건축이다.

폴 베를렌에게 랭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시를 어떻게 스는지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 안다' 본질을 잃고 언어를 유희하는 방법에만 의존하는 시는 껍데기다. 왜라는 본질에 관한 질문을 안아 철저히 자기를 부정하고 새로운 정신을 만들 수 있는 태도야 말로 진정한 시다. 과연 당신은 건축을 왜 하는지 알고 있는가.

16개 사례 중 초심자인 내 눈에 가장 놀라웠던 사례는 파리 퐁피두센터다.
농익은 20세기 건축이 매너리즘에 빠져드려는 시대, 건축에 대한 기존의 관념과 상상을 완전히 뛰어넘은 하나의 건축으로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건축이라는 평이 과하지 않다.
설비배관은 건물안에 감춰져야 한다는 상식을 뒤집어 마치 내장을 밖으로 드러내놓듯 건물 외부에 노출시킨 최초의 시도였다. 파격은 건물의 외양으로 그치지 않았다. 전시장은 구획되어야 한다는 관념에 맞서 내부 서쪽편 반을 용도도 정하지 않은 채 비워놓아 버렸다. 그 빈 공간에서 파리의 시민들, 이방인들, 광대들은 겪의 없이 자유로운 공연과 어울림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를 주조하는 증거가 되었다.

건축이란, 그런 것이구나.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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