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서평이었던가, 다윈 평전을 읽은 직후에 눈에 띄는 책 소개글을 보고 사들였던 책.
다윈=자연선택설의 주창자. 창조론의 발호에 쐐기를 박은 근대 자연과학의 거두. 맑스와 엥겔스조차도 그의 과학 업적을 찬양했던 인물. 정도의 단편적인 지식 대신에, 다윈이 얼마나 문제적인 인간인지 알게 되었는데, 하필 지은이가 <동물해방>의 피터싱어였다. 

저자의 주장을 소략하면,

지금껏 다위니즘은 우파의 전유물이었다. 세상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이 지배하는 살벌한 경쟁이며 그 원리를 입증한 것이 바로 다윈이라는 설명. 이런 논리는 사회진화론으로 발전되어 20세기 초반 구미의 지베엘리트들 사이에 유행했고, 이런 관점이 최악으로 치닫은 것이 바로 나치즘이다.
좌파도 다윈을 인식하기로는 사실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만 자연의 발전법칙을 종합한 것이 다위니즘이라면, 그보다 한차원 높은 발전원리를 지닌 인간 역사의 발전법칙을 규명한 것이 맑시즘이다.. 라는 속류의 주장이었을 뿐이다.

좌파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본질은, 인간의 의식은 변화발전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불변의 원리 - 성악설과 같은 - 로는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을 유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은 '개조'가 가능한 것이어야 했다. 혁명투쟁혹은 교육과 같은 목적의식적인 실천과정을 통해 사회주의에 걸맞는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수 있어야 했다.
"존재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며,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저 유명한 맑스의 명제가 도출되는 순간이다.
이로부터 현실 사회주의의 비극이 배태된다. 스탈린의 철권통치도, 마오의 문화혁명도 '낡은 체제의 구습에서 완전히 벗어난 공산주의적 인간형'을 만들어내는데 실패한다. 좌파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서서 목숨을 걸고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좌파의 대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좌파는 기치는 여전히 높이 올려져야 한다. 해법이 필요하다.

바로 '다윈주의 좌파'로의 변신이 그것!

다윈주의 좌파는 지금까지의 전통적 좌파들의 경향에 반대한다. 인간의본성이 언제나 '존재로부터 규정'당하는 변화무쌍하고 '개조가 가능한' 것이라는 속류유물론적 태도를 버린다. 대신 인간의 본성 가운데에는 변하는 것도 있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유연한 자세는 목표달성을 위해 '주체의 변화'만을 맥없이 되뇌는 오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변하지 않는 본성 - 동물이며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존재로서의 인간 -, 욕구를 가진점을 인정해야 한다. 무리한 개조대신 '보상'으로 접근하는 방식도 택하자는 것이다.

다윈주의 좌파는 초기 기독교사상에서 시작해 맑시즘에 이르도록 변함이 없었던 '인간중심주의'로부터도 자유로와지려는 세력을 말한다. 동물과 자연을 인간이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다는 -만물의 영장이므로- 관점에서 해방될 것을 주문한다. 

다윈주의 좌파는 또한 인간사회의 핵심원리에는 경쟁 못지 않게 '협력'하려는 본성또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책의 말미에 나온 지은이의 결론은 이렇다 (p108)

-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정책을 제시할 때에는 그 정책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제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주체의 혁신만이 능사가 아니다. 모든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끝없이 변화발전하는 존재일 수 없다.

- 어떤 것이 '자연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는 식의 추론을 거부해야 한다.
  ==> 역사발전 5단계설? 역사는 나선형으로 발전하는 것은 필연이며, 그렇게 발전하는 것은 '당위'다? 
       아니다. 더 나은 세계로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은 필요하지만 섣불리 '과학적 법칙'으로 포장하는 것은 종교다.

- 어떤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 아래에서 살든지,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키고, 권력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친족들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 이것이 바로 20세기에 현실 사회주의자들이 간과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다.

- 경쟁보다는 협조를 촉진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경쟁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향해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이것이 바로 19세기말 맑시스트들이 무시했지만 의연히 그 사상과 실천의 명맥을 이어온 아나키즘, 상호부조의 철학이다.

- 인간의 아닌 동물들을 착취해도 된다는 생각은 사람과 동물간의 간극을 과장하는 다윈주의 이전의 유산임을 깨달아야 한다. 동물들의 도덕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 약자, 빈자, 그리고 억압받는 자의 편에 섬으로써 좌파가 가졌던 전통적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이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곰곰이 연구해야 한다.

이는 거품을 뺀 좌파의 모습이며, 좌파가 일찍이 가졌던 유토피아적 사고를 버리고 실제로 어떤 것이 성취가능한지에 대한 냉철한 현실적 비전으로 대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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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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