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만난 김훈의 장편.
작년 늦가을에 출간되었다. 도서관에 나타난 것이 한 두 달 되었나? 인기작가의 신간은 으레 검색은 되지만 서가에서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반납을 하더라도 예약대기가 있기 때문이고, 책이 왔다고 그때마다 빌리러 갈 수 없는 나는 예약을 아예 시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오래 지나지 않아 미추홀 도서관이 보유한 두권모두 신간서가에 꽃혀 있는 것이다. 누가 가져갈새라 얼른 챙겨들었다. 빌어왔다. 책을 펼치고 사흘이 되지 않아 다 읽었다.

첫 느낌은,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작가는 나무에 대한 공부를 참 깊이 했으리라는 점이다. 주인공이 수목원에 임시직으로 채용된 계약직 세밀화가, 수목원 연구실장이니 말이다. 그들이 내는 대사와 풍경 스케치로부터, 섬세한 심리묘사에 이르기까지 나무와 숲과 식물의 생리에 대한 웬만한 배경지식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자전거매니아이듯, 어쩌면 원래부터 숲 생태학에 깊은 조예가 있었는지도 모를일이고.

숲과 나무에 빗대어 버무려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김훈의 특유의 서늘한 통찰을 보는 것은 이번 소설 최대의 미덕이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
"혈육이 없어서 인륜이 없고 탯줄이 없어서 젖을 빨지 않는 것이 나무의 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나무들은 각자 따로 따로 살아서 숲을 이룬다는 것을. 가을의 서어나무를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숲은 나무와 잎으로 가득 차서 서걱이지만 숲에는 피의 인연이 없다."

칼의 노래에선가, '시즙이 흐른다'는 표현을 처음 만나고서 꽤나 충격을 받았다. 속사포같은 짧고 날카로운 잽으로 도전자의 넋을 빼놓는 노련한 챔피언처럼, 김훈은 짧고 강렬한 단문의 조합으로 살아가는 일의 허무를 적나라하게 묘파한다. 현의 노래와 남한산성에서도 선보인 그의 장기는 이번 장편에서도 여러군데 보인다. 다만 그가 다루는 죽음과 주검들이 60년전 전쟁에서 죽이고 죽은 후 이제 뼈와 유품만이 남아 있다는 것이 좀 다를뿐.

그런데, 슬슬 식상해져간다. 문장도 길어졌다. 모순투성이 인생을 잘 담아내는 그의 문장이, 문체가 이젠 꽤나 익숙하다.

책을 읽고나니, 반가웠고 위무를 받았으나 새로운 이야기가 없어 못내 아쉬운 술자리 같았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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