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교양학부 김찬호 교수.,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했더니 일전에 혁재가 권했던 <교육개혁은 왜 매번 실패하는가>의 지은이였다. 까다롭지 않게 공감이 가는 논리로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을 차분하게 논했던 책으로 기억에 남았던 것처럼, 이 책 <생애의 발견> 또한 '잔잔하게' 공감과 깨달음을 준다.

'유년', '이십대' '삼십대', '연애', '외도' '갱년기' 등 한국인의 생애 단계를 각각의 독립된 꼭지로 삼아 인물과 사상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묶은 책이다. 그래서 각각의 글이 완결성이 있고 울림이 있다. 원래 전공은 사회학인데 문학에 대한 조예도 풍부하다. 인간 삶의 진실을 포착한 다양한 이야기와 사례를 동서양의 문학에서 종횡무진 끌어와 생각을 곱씹게 해 주는 점도 좋다.


밑줄 모음.

"어른들은 현재의 자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돌아볼 일이다.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판과 골목을 누비던 유년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삶이 얼마나 삭막해졌을까? 그러한 시공간을 경험하지 못하면서 자라나는 지금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추억을 먹고 살아갈까?" (성장과 자립, 24쪽)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어른들과 밀착해서 일을 도모하고 겨루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언어가 빈궁하다. 또래끼리 편안하게 욕이나 은어를 섞어감 내뱉던 말투로는 어른들과 대화할 수 없다. 젊은이들은 존대어로 자신의 생각이나 상황을 격조있게 설명하는 언어에 서툴다. 예절을 갖추면서도 당당한 모습으로 어른을 대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대가족에 형제자매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가족을 넘어 마을에서 여러 연령대의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사귀었다. 형, 오빠, 언니, 누나로 부르거나 ...부모 이외에 동네 어른들과 늘 인사를 주고받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한 생활환경에서 입에 욕을 달고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욕설의 문제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 자체가 폭넓은 인간관계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성장과 자립, 43쪽)

"흔히 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어떤 고기를 얼마만큼 잡을 것인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체력을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다가 과로로 쓰러질 수 있고, 너무 많이 잡아 올린 고기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그물이 찢어지거나 배가 침몰할 수도 있다. 고기 씨가 마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교육은 그런 마구잡이 어획과 비슷한 지경이 아닐까. " (59쪽)

"흐트러지고 망설이고 헷갈리면서도 삶의 근본 바탕은 오히려 더 탄탄하게 다져질 수 있다. 그것은 자아의 본질을 어떤 차원에서 규명하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나의 직업이나 직장이 곧 정체성인가.
지위나 연봉이나 성취로 환원되지 않는 '나', 그 자체를 만나야 한다. 흑백론이나 이분법은 금물이다. 속물적인 기준으로 세워진 직업의 위계서열에 복종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도달하고자 하는 인생의 급수를 정하고 매진해야 한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존재의 비밀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또 다른 가능성들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정신의 스태미나가 필요하다." (삼십대, 110쪽)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적어도 삼십대에는 확신을 못할지언정 결정은 해야 한다."
(시오노 나나미 인용, 108쪽)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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