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bb군. 책을 권해달라고 했지?
깊이 생각해보기 전에 이 책이 먼저 떠올랐어.
시간을 두고 생각해봤으면 이 때에 자네에게 맞을 만한 책이 뭘까 한참 궁리하다가 아마도 다른 책을 들었을거야.

이 책, 최근에 막 읽었고 무척 재미있었어. 내가 요즘 빠져있는 문제거리를 푸는데 실마리를 주었기 때문에 더 그랬겠지. 자못 남성적인 스타일과 스케일인것 같기도 하고.

마흔을 앓던 올 봄 어느 날 생각해보니, 아마도 나는 내게 허락된 生의 시간을 이미 절반 넘게 써버린 것 같더라. 그런데도 나는 아직 한 곳에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있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돌고만 있는 것 같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말과 글로 사람들 사이를 잇는 일이 내게 소임이 되기를, 그 소임을 잘 해낼 수 있기를 소망해왔는데.
문득 돌아보니, 사람들 사이가 이어지기를 바라며 내어 놓는 내 말들이 참 공허한거야. 대지에, 현실에, 노동에 뿌리내리지 못한 몸과 마음이 내놓는 내 말과 글들이.

마음을 고쳐잡으며 생각했어. 이제는 더 이상 말을 팔아서 먹고 살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어. 이 책을 펴든 것이.
이 책의 무엇이 마음에 와 닿았냐면,. 아래에 정리해둔 밑줄을 참고하시길..

내 마음엔... 두 가지 과업이 새겨져 있었다. 부처에서 벗어나고 모든 형이상학적인 근심인 언어에서 나 자신을 끌어내고 헛된 염려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 (88쪽)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나는 허망한 기분으로 지난 일을 생각했다. (188쪽)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190쪽)

달빛을 받고 있는 조르바를 바라보며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 것(여자,빵,물, 고기,잠)이 유쾌하게 육화(肉化)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207쪽)

"두목, (당신의 자유를 묶어 놓은 줄을 자르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이 잡것이! 줄을 놓쳐 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463쪽)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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