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토피아>

독서일지 2010. 4. 21. 14:12

작년에 서점에 들렀다가 신간 서가에 놓인 <에코토피아 비긴스>를 본적이 있었다. '에코토피아'라, 미국작가인것 같은데, 소설 제목 참 흥미롭군.. 하고 지나쳤다.
특급 번역가로 이름을 익혀두고 있던 김석희의 책을 흝어보던 중, 그의 번역서 목록 가운데 '에코토피아'가 들어 있었다. 작년에 슬쩍 봤던 그 책인가 했다. 그런데 원서가 나온 년도가 1975년도란다. 번역서가 나온 것도 이십년이 다 된 1991년!!
도서관에서 <에코토피아>를 찾아 빌었다. 정신세계사 출간이다. 이 점 또한 흥미롭다. 정신세계사라...
20년 묵은 책이니 요즘 기준으로 보면 글자도 작고 종이도 후지고 편집도 엉성했지만 '김석희'이름 석자 믿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 참으로 비범한 책이었다. 문고판으로만 대충 넘기고 제목과 줄거리 대강만 알고 있던 조지 오웰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1975년에 이런 책을 쓰다니!!
물론, 1975년이면 68년 혁명과 1차 오일쇼크를 지내고, 미국의 베트남 패퇴가 이루어진 시기다. 조지아주 주지사로 있던 지미 카터는 그 다다음해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을 정책으로 펼쳐나가게 될 것이기는 하다.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가 세상을 놀래킨 다음이고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경-생태주의 운동의 성장속에 생태주의 담론이 지식사회에 익숙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환경운동이 단순히 반공해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정치/경제/문화에 이르는 일종의 대안세계를 상상하고 구축하는데 까지 영역을 넓혀 전체론적인 인식을 획득한 것은 그닥 오래지 않았다.

이 책이 비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미 70년대 초반에 작가는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현대문명의 한계를 간파하고, 그 대안이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의 변화와 재구성에 미쳐야 함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책 뒤표지에 보면 <타임>에서 '환경문제의 고전'이라고 칭송했다는데, 전혀 과장이 아니다.

간략한 줄거리. 2000년대의 어느 무렵,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일부를 포함한 미국의 북서부 지역이 미 연방으로부터 탈퇴하여 독립한다. 에코토피아는 그 나라의 이름이다. 독립을 용납할 수 없었던 미연방은 군사적 공격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압박과 봉쇄를 시도하지만 함락시키는데에는 실패하고 20년의 세월이 흐른다.
신문기자 윌리엄 웨스턴은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에코토피아 나라 곳곳을 6개월 기한으로 취재하게 된다. 이 책은 미국인 웨스턴이 6개월동안 에코토피아를 취재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묶은 취재기 형식을 띠는데, 결국 6개월이 지난후 웨스턴은 귀국 대신 에코토피아에서 만난 벗과 사랑을 선택하면서 에코토피아야 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모델임을 역설하면서 마무리된다.

에코토피아는 하나의 독립된 국가이며, 사회/경제 활동이 자족적으로 이루어지는 단위이다. 단순히 석유 대신 대안에너지를 쓴다던가,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소비생활을 한다던가 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인간이 누리는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구현되는 (소설속에) 실재하는 친환경 (eco) 이상향 (topia) 을 그리고 있다.
모든 영역은 인간 생존에 필요한 필수 영역 - 먹고, 입고, 자는 기본 소비뿐만 아니라, 공업생산 / 교육 / 의료 / 교통수단 / 도시 / 건축 / 과학기술 등.
의미심장한 것은, 이 모든 영역의 변화에 중심에서 에코토피아의 건설과 운영이 가능하게 된 핵심 요소로 인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종류의 인간형!!
에코토피아 인들은 현대문명인의 관점에서 볼 때엔 놀랍도록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다. 의례적인 인사치레는 아예 알지못하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맺고 풀어가는 기본원리를 경쟁대신 우애와 협동으로 채택하고 있으므로 늘 진심을 담은 선의의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지나가던 사람들끼리도 눈빛이 마주치면 피하지않고 정면으로 응시하고, 마음은 잦은 스킨쉽으로 표현된다.
개인주의와 문명사회의 권태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소비하는 대신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직접 만드는데서 기쁨과 충족감을 얻으며, 고립감과 자기분열적 상태는 회복된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다.

지은이 어니스트 칼렌바크는 후속편으로 <에코토피아 비긴스>를 4년 후인가 내 놓았다. 이 놀라운 나라, 에코토피아를 어떻게 건설했는지 (비긴스!) 전(前) 과정을 더욱 깊은 상상력과 통찰로 그린 작품이라 한다.
내가 서점에서 작년에 신간으로 본 바로 그 책이었다.

Posted by 나무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