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키워드를 '느림'으로 선택했었다.
지금생각해봐도 선택은 참 훌륭했다.
다만, 내 생활을 느림 대신 조바심과 일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을
차분히 따져보고, 느림을 회복하기 위한 실천의 결단을 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느림에서 삶이 멀어진 것을 인식하고 논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 오히려 지금 현재 이곳에서 내가 속해있는 문명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수준의 비판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느림'을 키워드로 삼아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회복하자는 이야기를 건네는 책이다. 지난달에 처음 접해본 알랭 드 보통의 책도 그랬는데, 프랑스 인들의 문장은 프랑스다운 점이 있다. 늘 삼가며 손님을 맞이하듯, 몸에 배어 있는 겸양의 자세가 글에도 나타나는 일본인들처럼 말이다. 내가 느낀 프랑스다운 문장은, 문체와 관심사의 현란함이다. 어지러울 정도로. 잘 적응도 안되고 내 취향도 아닌 것 같다.

밑줄.

삶이란 내게 주어진 행운, 그것도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단 한번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매순간 살아 있는 존재로서 아침마다 햇살을, 저녁마다 어두움을 맞이하는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며, 세상의 만물이 탄생할 때의 그 빛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미소나 불만스러운 표정의 시작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세상이 계속해서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내가 조금씩 아껴가며 꺼내 놓고 싶은 행운인 것이다.
이 삶이라는 특권을 참되게 누리기 위해서 나는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 오직 시간에게 쫓기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정직하지 못한 여러가지 제안들로 내 공간을 잔뜩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을 미워한다. 나만의 리듬에 맞추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 팔자가 내게 운명지어 준 리듬에 맞추어 조용히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나를 내버려두어 달라고 그들에 정중히 부탁하고 싶다.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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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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