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란이라니

현실과 대안 2019. 9. 9. 15:08

뜻만 통한다고 해서 다 같은 말이 아니다.

예컨대, 나는 '보여진다'라는 겹피동 서술어미를 남발하는 자를 일단 불신한다.

"조국 임명 강행으로 향후 정국은 극도로 불투명할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런 투.

누가 보는 것인지가 불명확하다. 책임질 마음이 없다. 

보인다도 아니고 보여'진다'라고 한겹 막을 또 치며 한발짝 더 물러난다.

노동하는 이들은 대개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비겁한 책상물림 가운데 많다.

나경원이 말했다. 조국을 임명하면 '민란 수준 저항'이 일어날 거라고.

말뜻은 알겠다. 그런데 왠지 재수가 없다.

'민란'의 '란'은 '난동'의 난이다. 난동은 비정상이며 무질서다.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대상이 난이다.

고로 민란이란, 봉건왕조시대 지배계급이 민중의 위대한 전진을 폄하할때 쓰는 표현이었다. 요샌 쓰지 않는다.

요샌 '투쟁'이나 '혁명'이라고 말하면 되니까.

'촛불혁명에 버금가는 저항'이라고 해도 될 것을 '민란 수준 저항'이라고 쓴데에는 아마도

나씨의 머릿속 한 구석에 민중의 저항에 대해 그의 DNA에 박힌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지배계급들은 또 '서민'이란 단어도 즐겨쓴다. 이도 마찬가지다. 서민은 호명당하는 언어다.

서민 스스로 나를 서민이라고 하지 않는다. 서민위에 선 자들이 낮춰서 말할때 서민이라고 말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그들의 뼛속깊이 박혀있는 썩어빠진 관점의 찌꺼기들이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튀어나오나보다.

 

지배당하는 자 편에서 볼 때, 지배계급들은 우리에게 적이 맞겠다.

가끔은 타협없는 전쟁을 불사해야하는 대상으로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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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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