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시공사, 2012

 

얼마전에 읽었던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도 그랬듯이, 이 책을 읽으며 죽음에 대한 불안함을 좀 덜 수 있게 되기를 기대했다. 소득이 없는 독서란 없는 법이니 약간의 실마리를 찾아 볼 수는 있었지만 만족스럽진 않았다.

당연할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가 아니라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를 주제로 한 책이니. 더구나 저자는 천문학자다.

당신이 늙는다는 것 -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 인류는 어떻게 멸종될 것인가 -..... - 거대한 종말. 로 이어지는 목차에서 보듯, 개체의 노화와 죽음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지고, 지구온난화와 소행성 충돌로 비롯될 다음 번의 멸종의 시대로 바통을 넘겨받은 이야기는 태양계의 죽음과 우주의 소멸로 끝을 맺는다. 스케일이 정말 큰 이야기보따리다.

 

현존하는 동료 생물중에는, 외부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면 영원히 생을 이어가는 종도 있다. 세포분열로 증식하는 단세포 동물의 경우가 그렇다. 즉, 노화와 개체의 죽음은 양성 생식의 이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개체의)죽음은 개체 수준이 아닌 종의 번식과 존속을 위해 수억년의 진화의 과정에서 터득한 생존 노하우인 셈이다. 약간의 위안이 되려나.

 

 

오래 전, 학창시절 맑스철학을 소개하는 대한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할 때 이른 바 '불가지론'에 대한 비판 일색의 내용이 인상깊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의 의식에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가 있고, 의식은 그것을 반영하는 것이 '속성'일진대, 자연과 인류역사의 합법칙적 발전의 존재를 전제할 때 불가지론은 결국 반혁명적 태도로 귀결된다... 당시 내 머릿속에 정리된 논리였다.

허나 여전히 의문이다. 인식가능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는 나를 깨달음으로써 나약해지고 무력해져 버리는 걸 막을 수 없다. 

역자의 말 가운데 의식을 가진 생명체가 감지하지 못하는 우주의 존재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대목이 있었다. 여전히 개체로서의 나는 내가 생존하며 감지하고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 과연 무엇이될지, 많이 두렵다.

 

 

 

<반란의 조짐>, 보이지않는 위원회 지음, 여름언덕,2011

 

'보이지 않는 위원회'는 2008년 프랑스 경찰이 검거했다고 밝힌 '극좌 아나키스트 조직'의 명칭이다. 실재 테러를 저지른 혐의에 입각하여 수사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듬해 이들은 모두 석방되지만 이 사건의 배경에는 '보이지 않는 위원회'라는 이름으로 2007년에 출간되었던 이 책, <반란의 조짐>이 있었다고 해서 유명해 진 책이다. '르몽드'등 주요언론에서 주목하며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까지 올랐다고 한다.

이 소책자는 실업자가 양산되고 빈부격차가 날로 심해지며, 급증하는 이주 노동자와 극빈계층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한 프랑스의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팜플렛이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에는 우파는 물론 좌파정치세력과 각종 사회단체, 개량적인 환경주의자 - 녹색당을 포함한 - 마저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이 착목하는 것은 '코뮌'이다.

 

집단화된 세력이 내부인과 외부인을 나눔으로써 스스로를 한정하는 것과는 달리, 내부의 결집력, 그 밀도만으로 충분히 자신을 정의하는 코뮌,.... 코뮌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아니라, 그 모두를 아우르는 정신으로 정의될 코뮌... 누구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모든 과격한 파업은 코뮌이다. 코뮌은 모든 경제적 의존관계와 정치적 예속을 청산하길 원할 뿐더러, 자신을 일으켜 세운 진실에서 멀어질 경우 그대로 소멸해버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03쪽)

 

정치성을 띠는 우정이라 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코뮌으로 조직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영역을 창출하고 소통하며 경찰력을 포위해나가는 과정을 거쳐, 드디어 반란을 주문한다.

 

영역을 점유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코뮌들을 밀집시키고 그 사이의 소통과 연대의 밀도를 높여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영역을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영역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영역이기를 원한다.... 지역의 자생적 조직은 국가 체제의 지도 도면에 자신들만의 지형도를 중첩시킴으로써, 오히려 그것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무력화시킨다. 자력으로 지도에서 이탈하는 셈이다.  (111쪽)

 

반란이되 엘리트가 이끄는 그런 종류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이들은 '총회'를 없애버리라고까지 한다.

 

회의를 열고 투표를 해서 무언가를 결정하려는 것으로 그 회의는 권력을 지향하는 온갖 요구들의 악몽 같은 각축장이 될 것이다.... 회의 자체는 무언가를 결정하기보다는 아무 목적 없는 말이나 서로 떠벌리려고 만들어지 것이다. 무언가를 반드시 결정해야만 할 경우는 드물다. 결정의 상황에서는 민주주의의 실행이 어떤 식으로든 위협받기 마련이다. 회의에서 말과 제스처, 사람들 간의 마인드 게임을 한껏 허용해야 한다. 누구든 각자의 의견만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잡다한 욕망과 집착, 능력, 힘, 슬픔 그리고 상당한 여유를 가지고서 그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총회의 환상을 과감히 폐기하고 대신 참석자들의 회합이라는 단순한 인식에 이르다보면, 그래서 늘 새로워지는 헤게모니의 유혹을 근절시킬 수 있다면,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을 궁극의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있다면, 이른바 임계질량이 형성될 기회는 언제든 찾아온다.  (127쪽)

 

이 집단, 꽤 매력적이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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