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좋은 벗들을 만났으나

술이 빠진 자리라 못내 아쉬워

소주 한병과 큰 애가 좋아하는 '뿌셔뿌셔'한 봉을 사들고 들어왔다.

 

현장에서 저지른 실수탓에 종일 화가 난 채로 하루를 보냈다. 그래서 굳이 소주가 땡겼다.

 

이 실수는, 내 손으로 내 집을 짓는 경우라면 실수가 아닐 수도 있는, 그런 거다. 나는 이왕이라도 다홍치마에 관심없는 부류니까.

나는 일정한 기준에 부합하게 일처리를 해낸다는 것을 전제로 고용된 노동자다. 따라서, '일정한 기준에 부합한 일처리'능력이 모자라다는 판명이 날 경우엔, 고용의 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는 거다.

그래서 실수다. 일정한 기준에 부합한 일처리를 입사 2년이 넘도록 종종 못하고 있고, 그로 인해 회사에 물적 손실을 여전히 입히고 있다는 것. 음.. 그런거라면, 써놓고 보니, 그건 실수해서 죄송합니다~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로구나. 해고사유?

 

나의 노동은 집이라는 사용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다. 허나, 구매자가 기대하는 만큼의 교환가치또한 만들어 내야 할 의무가 내겐 있다. 그래서 각이 중요하다. 마감이 생명이 된다. 작은 실수와 에누리가 용납이 될 수 없다. 기스난 아이폰, 어떤 소비자가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겠는가. 그런거다. 마감된 벽면의 칼라와 질감, 빈틈없이 마무리된 천정의 칼라와 간접조명의 빛나는 조화, 아차!와 땜방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그건 아마추어다. 아마추어도 최저생계비는 받는다. 그런데 나는 최저생계비로는 생존을 유지할 수 없는 40대 가장이다. 부양가족이 넷이나 딸린. 담보대출 이자만 가구 소득의 십프로 이상 지출해야만 하는.. 나는 프로이어야 한다. 프로이어야 하는 나는, 내 능력의 도달여부와 무관하게, 내게 요구되는 일정한 수준의 잣대에 부합한 품질의 서비스, 혹은 상품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실수건 과오건, 그건 내 알바고, 구매자의 관심사는 결코 아니다. 구매자는 오로지 '각'을 바라며, '각' 생산을 관리하는 능력을 검증받지 못한다면, 기다리는 건, 간단하다. 퇴.. 출..

 

불가 용어를 동원하자면, 오늘 나는, 그런 경계에 임하고 말았다. 실수 없는 관리능력을 보여줄래 - 2년씩이나 되었으니 - 아니면, 잘릴래, - 네가 개인적으로 성실했건 진실했건, 진리를 주장했건, 그건 뭐 네 맘대로 해.. 중요한게 아니니까. 뭐 이런 것.

 

다시 나에게 좀 더 집중.

실수의 원인은 무얼까. 어저께 '졸라' 봤다. 도배 마무리 하자 놓치는 실수를 몇 번 했던터라, 문틀과 벽 모서리 주변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딴생각 안했다. 그런데 등기구와 만나는 부위에 대한 검토는 쏙 뻬 놓았다. 팟알에서도 한번 실수했던 건데 또 실수한 거다. 이유가 뭘까.

 

내가 굿하우스 사장이라면 안했을 실수였을까. 안 그랬을 것 같다. 아, 물론, 이런 식으로, 교환가치 후지게 살아가면 사장 될 일도 없을테니 황당한 가정법이다.

 

 

 

 

 

 

 

좃까고 있다.

 

 

 

 

말장난 하고 있다.

 

 

 

내 기준으로 성실했던 일인데 - 성실함의 결과가 '하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건, 이 바닥에 오기 전엔 잘 몰랐다 - 용납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고, 수습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네이버 카페 초대메일 가운데, 재능기부를 주제로 한 카페에서 온 게 있었다. 잠깐 흝어보니 당신이 재능이 업을거라고 예단해서 실망하지 말란다. 심지어, 아침 일찍 모닝콜 해주기 따위도 재능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금전적인 보상도 가능하단다.

 

내 기준으로, 더 이상 성실할 수 없어 과오를 저지른 오늘 생각하기에, 황당한 메시지다.

 

그런데 좋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유용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난 새벽에 잘 일어날 수 있고, 잘 일어나서 창출해내는 가치도 적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따져보니,

그런 걸로 칭찬받아본 적은 한번도 없다.

 

젠장, 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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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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