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나빠져가는 기억력에 맞서기 위하여 화요일에 다녀왔던 감상 몇가지를 짬이 날 때 적는다.

2011년 6월 26일 화요일 우이령길과 맞붙어 이어지는 북한산 둘레길 1,2코스를 걸었다.
우이령길은 기대에 못미치기는 했지만 간만에 고즈넉한 숲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 해가 높이 솟기 전인 아침 시간에 걸은 길이라 더위도 참을 만했다.

점심때가 좀 못되어 구간이 끝나는 곳에 다달아, 애초 염두했던 둘레길 코스로 접어들어 걸었다.
알고봤더니 대학시절 몇차례 엠티에 갔던 그 '우이동계곡'이 바로 우이령길 옆 계곡이었다. 추억의 장소,, 였다.

요새도 대학생들이 이곳에 엠티를 많이 올까? 계곡길 양옆으로 즐비한 식당 밀집 촌은 여전히 "엠티 환영"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지만 떼지어 몰려 오는 젊은이들보다는 평일 낮시간에 조용히 승용차를 몰고와
시원한 계곡에서 보양식을 즐기고 싶어하는 구매력있는 중장년층으로 타객고객을 바꾼 것 같은 인상이었다.
 
이곳이 바로 둘레길 1코스, '소나무 숲길 구간'이다.
북한산 하면 떠올리는 우이동계곡, 그 대표적인 휴양 혹은 위락시설 지구이므로 1코스로 선정이 된 것일테지만
제주올레길이나 강화 나들길의 '마을길 나들이'의 느낌과는 영 딴판이라 좋지 않았다.

엠티촌이 끝나고 국도와 만나는 곳에 '그린파크'가 있다. 대학시절 엠티를 가던 때에서 다시 십여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나만의 또다른 추억의 장소다.

꿈결인듯 오랜 기억인 듯 가물가물한, 예닐곱살 나 엄마와 누나 손을 잡고 난생 처음 가본 '놀이공원'이 바로 이곳 그린파크였다.
무척 어지러웠지만 재미있었던 빙글빙글 도는 커피잔 놀이기구가 떠오른다. 아마도 신록이 눈부신 어느 봄 일요일이었을게다.
비스듬히 우거진 나뭇잎 사이로 찬란하게 햇빝이 쏟아졌고, 
오로지 우리들만을 위해 - 할머니나 아버지께 덜어줄 필요가 없는 - 보여준 어머니의 환한 웃음
누나와 나, 까르르 지르는 즐거운 비명소리, 그리고 칠성사이다의 톡 쏘는 청량감.

그런 추억이 있었다.
있었다. 이제는 영원히 없어졌다, 그런 추억의 장소 따위는.
쌍용건설에서 그린파크 부지를 사들였나보다. 공원전체를 싹 밀어버리고
거대한 규모로 콘도를 한창 짓고 있었다. 귀청을 찢는 건설중장비의 굉음.
북한산 둘레길에 대한 두번째로 낙심한 순간이었다.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숲길을 돌아 돌아 1코스를 지나
2코스 '순례길 구간'으로 향했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둘레길이나 올레길의 특징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마을 곁에
원래 있었던 길들을 도보여행 구간으로 재구성하고 재창조한데 있다.
당연 북한산 둘레길도 걷다보면 오른쪽은 숲이요 왼쪽은 주택가 도로가 면한 곳이 곳곳에 나타가게 된다.

그런 도로변에는 어김없이 안내표지가 있다.

"이 구간은 마을을 통과하는 곳입니다. 조용히 해주시고 절대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내가 본 것만 열개도 넘었다. '맞아, 이건 산길이 아니잖아'하고 그러려니 넘어갈까 하다가, 자꾸보니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여기를 과연 '마을'이라고 호칭하는 것이 적절한가?

평창동이나 성북동에 부자집이 모여있고, 인천의 옛 부자동네도 자유공원아래 내동에 형성되었듯이
경관이 수려하고 공기 맑은 대도시 산아래 동네는 오래전부터 부자동네였다.
4.19 묘지길이나 도선사 길 주변에 있는 주택가도 말할나위 없다.

아파트 숲 천지인 요즘엔 구경조차 하기 힘든 한마디로 '성(城)'같은 집들이 천지다. 건축 잡지책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건축가표 고급양옥집, 멋진 정원, 높은 담벼락, 아주 견고해보이는 철 대문과 그 옆에 빠짐없이 붙어있는 '세콤경비구역' 표지까지.

부자 일반에 대한 묻지마 적개심이 아니냐고 탓해도 할말은 없으나, 나는 그런 동네를 걸을 때면 속 깊은 곳에서 욕지기가 치민다.
자기들만의 성을 구축하고 섬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꼴보기 싫어서다.
밖으로 보이는 건 80평아파트나 15평 임대아파트나 별 차이가 없는 '평등한' 아파트 방화문과는 달리
높은 담벼락 옆 '세콤경비구역' 표지는 정말 정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곳도 '마을'이라고 불러도 되나?

이명박 XXX와 그의 딸랑이 오세훈 XXX가 사람을 망치고 땅과 물을 더럽히는 것도 모자라
아름다운 우리말까지 하도 오염을 시키다보니, 이제 그런 것 즈음은 트집거리도 못되는 것일까.
정확히 형용모순을 이루는 두 낱말 녹색과 성장을 결합시켜 '녹색성장'이라 칭하고
실제의 의미는 정확히 정반대를 내포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를 말하는 마당에
뭐 그런거 가지고 할 수도 있겠다.

네이버 지식사전에서는 마을을 이렇게 정의한다.

마을 : 주로 도회지 밖에 비교적 소수의 살림집들을 구성요소로 하여 한 떼를 이루고 있는 지연(地緣) 단체. 리(里)나 구(區)로 나누어 있음. 또는 그 단체를 이룬 곳.

혹은 마을과 거의 같은 의미의 한잣말인 촌락에 대해서 네이버 백과사전의 풀이는 이렇다.

촌락 [村落, village ] 도시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주로 농림업·수산업·목축 등과 같은 제1차산업에 의해서 생활하는 지역사회를 말한다. 촌락은 시대나 지역차에 따라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다. 촌락은 물을 얻기 쉽고 토지생산성이 좋으며 교통이 편리한 곳에 주로 위치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역에 촌락이 형성되었다.
도시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주로 농림업·수산업·목축 등과 같은 제1차산업에 의해서 생활하는 지역사회를 말한다. 촌락은 시대나 지역차에 따라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다. 촌락은 물을 얻기 쉽고 토지생산성이 좋으며 교통이 편리한 곳에 주로 위치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역에 촌락이 형성되었다.

표지판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정직하게 써보면 이렇게 될 것이다.

"이곳은 둘레길 개통으로 집값상승을 기대하고 있는 소자산가 일부와, 조용한 분위기와 맑은 공기를 독점하고자 도심에서 거리가 멀지만 개의치 않고 고급주택을 짓고 사는 부유층이 밀집해 거주하는 택지지구입니다.
소란을 피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 관공서로 민원이 들어오면 공무원들이 피곤해지므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택지역쪽은 쳐다보지도 말고 정해진 둘레길 코스만 다니시길 바랍니다. 적발시 엄벌에 처할 겁니다"


내가 둘레길이 불쾌했던 또한가지 이유는, 관주도하에 거친말로 '돈지랄'을 해서 조성한 '길' 때문이다.

둘레길 답게 원래 '마을'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라면 그것도 동네 뒷산을 경유하는 길이라면 대개 불편하고 찾아보기 어려운 좁은 길일 경우가 많다. 내가 1,2구간 주변에 살던 어린시절 뛰어다니던 동네길들도 그러했다.

그런데 이 둘레길은 온통 값비싼 수입목을 화학약품에 푹 절여 만들어낸 방부목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포장을 해대었다.
그리고 둘레길의 표지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만들었을 '관제'표지다.
바로 이 놈.


찾기 쉬운 것 하나는 인정한다. 그런데 모양만 좀 이쁘다 뿐이지 너무 관스러운 냄새가 물씬 풍기신다.
시종일관 저 표지만 찾으면 길을 잃을 위험이 없다. 그리고 대로를 벗어나면 어딜가든 길 좌우를 방부목 목책으로 막아놓아서 더더욱 길에서 벗어날 일이 없다.
내가 이걸 보려고 여기 온건가? 싶게 말이다.
이런 길이라면 북한산보다 모든면에서 후진 문학산, 심지어 우리 동네 오봉산에도 천지다. 요샌 방부목데크가 대세니까.

동네 주변과 들과 숲 사이를 오가는 그 길의 매력은
길을 걷다 생각에 빠지면 조금은 돌아가는 오솔길로 접어들기도 하고
약간은 위험하거나 지저분하다 싶은 동네 후미진곳도 통과하며
인간계를 벗어나 떨어져있는 산 속 숲길과는 다른 사람의 냄새에 열려 있는 길이라는 데 있는게 아닐까 싶다.

오세훈표 북한산 둘레길은 이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 길이다.
길에 참여가 없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는 귀결이었을 것이기는 해도.


결론. 내가 걸어본 북한산 둘레길.

아침마다 아파트 단지내 헬스장에 가서 돈쳐들이며 찌운 살, 다시 돈 쳐들이며 빼듯이
주말마다 폼나게 조금 거리가 떨어진 위치에 야외 걷기운동을 할만한 곳으로
북한산 둘레길을 기대했던이라면 최고의 길이다.

마을길, 동네 뒷산의 느낌을 맛보며
역사와 문화와 생명과 자유를 기대하는 이에게는 최악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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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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