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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기운을 느끼고 싶었다. 운길산에 다녀왔다.
광우형하고 같이 가잔 얘기를 했지만, 이번 주로 미루다가는 날씨도 시간도 맞추기 힘들 것 같아
그냥 혼자 다녀왔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운길산만 달랑 다녀오기엔 코스가 너무 짧은 것 같았다. 흥미롭게도 예봉산-운길산 종주코스가 있었다. 예상 소요시간 6시간. 적당했다.

5시에 일어나 저녁에 미리 데쳐놓은 시금치 나물과 전전날부터 해감을 시켜놓은 바지락을 꺼내 시금치된장국을 끓였다. 처음 끓여본 건데 네이버 레시피대로 따라 했더니 맛있게 되었다. 혼자 놀러가는 부담을 덜어도 되겠다 싶어 마음 편하게 도시락을 쌌다. 최대한 절약하려 냉장고에 있는, 빨리 해결해야 하는 밑반찬을 골라 담았다.

계획대로 용산을 거쳐 중앙선을 타고 8시 45분경 팔당역 도착. 아직 본격적인 봄꽃 관광철도 아니고 평일이라 등산객은 거의 없었다. 최근에 정비한 듯한, 곳곳에 설치된 안내지도 덕택에 거의 헤매지 않고 산에 올랐다.

혼자 쉬엄쉬엄 예봉산 정상에 오르니 10시 반경. 간식으로 준비해간 고구마 반개를 혼자 우적우적 먹었다. 봄 햇살이 따스했다. 데우지도 차게 하지도 않은 그대로 담아 간 보리차 맛도 좋았다. 산 허리 아래에서만 진달래를 볼 수 있었고, 간간히 성기게 핀 산수유가 새 봄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지만 봄은 봄이었다. 밤 사이 영하로 떨어졌을 날씨, 차가운 대기로 얼어붙었던 산흙은 갓난쟁이가 요에 이쁜 오줌 지리듯 물기를 머금고 녹아내려 훈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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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생긴 동안 내장플래시가 고장났던 카메라를 큰 돈 들여 고친것이 지난주, 만만치 않은 무게를 감수하고 카메라를 챙겨갔지만 하루종일 연무가 걷히지 않아 기대만큼 그림이 되는 풍경은 별로 담지 못했다. 예봉산-운길산 산행의 묘미는 물이 가득한 양수리의 운치를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점이라 들어서 기대를 많이 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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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읽고 있는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 나오는 한 대목.
"삶이란, 나에게 주어진 커다란 행운이다.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이 내 몸을 감싸고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리며, 꽃들의 향기로움에 취한다. ......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점에서, 삶은 행운이다. 따라서, 그 행운으로 주어진 삶을 제대로 음미하고 살아볼만 한 것이다"

오롯이 혼자 뻘뻘 땀을 흘리며 예봉산 정상을 오르는 동안, 코 앞에서 나무를 쪼고 있는 딱따구리를 보고 한 참을 내 곁을 기웃거리다 날아간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산 새를 만났고, 도망갈 줄 모르고 눈치만 보던 도마뱀과 경쾌하고 날렵한 다람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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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길산 정상 아래에서 들렀던 수종사, 카메라에 담아보려해고 했던 풍경의 소리가 맑았고,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며 매달린 형형색색의 연등이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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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제자리에서, 저의 때를 놓치지 않고 제 노릇을 하는 모든 존재들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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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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