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호퍼의 자서전. '길 위의 철학자'는 수사가 아니다.
자신이 당장 죽음을 택하는 대신 살아야 할 이유를, 도시와 도시를 잇는 길 위를 살아서 걷고 있음에서 깨달아 찾은 이십대 후반부터, 그의 사유는 늘 머물지 않고 길 위에 있었다.
에릭 호퍼는 독일 이민자 출신의 미국인이다.
평생을 노동자로 살았으나, 방대한 독서와 독창적인 사유로 '세계적 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라고 한다.
방대한 독서는 그를 노동자 계급의 일원이기보다는 철학자로 만들었다.
하여, 그는 길 위의 철학자이다.

어린 시절 사고로 몇년동안 전혀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였던 그, 열 다섯살이 되어서
기적처럼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다. 보는 것에 대한 갈증이 극에 이르렀던 호퍼는 미친듯이 책을 읽어댄다.
그리고 때 이른 부모의 죽음과 그를 찾아온 고독, 가난.

독서로 쌓은 지식의 양 덕택에, 날품팔이 노동자 생활을 하며 그는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방법을 깨닫는다. 먹고 자며 생활할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만큼의 돈만 필요로 했던 그는 많은 돈을 벌 위험(?)에 처할 때 마다 짐가방을 싸서 다른 도시로 가는 길에 오른다.

그 길위의 사유를 아포리즘(격언, 잠언) 형식의 글로 풀어내며, 4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10년에 한 권씩 책을 펴냈다. 아포리즘을 택한 이유는 그것이 거대 담론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형식이기 때문이란다.

노동하며 철학하는 인간의 삶, 경이로왔다.

이 책에 소개된 그의 아포리즘 몇 가지.

인간이 스스로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지 못할 경우, 자유는 성가신 부담이 된다... 우리는 개인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젊은 나치의 말 그대로 '자유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대중운동에 가담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극악한 행위에 대해 나치의 말단 병사들이 자신들은 죄가 없다고 주장한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명령에 따른 책임을 져야 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은 속았고 무죄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나치 운동에 가담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할 근거가 약할수록 자신의 국가나 종교, 인종의 우월성을 내세우게 된다.

교육의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주는 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 배우는 사회이다.

절대 권력은 선의의 목적으로 행사될 때에도 부패한다. 백성들의 목자를 자처하는 자비로운 군주는 그럼에도 백성들에게 양과 같은 복종을 요구한다.

절망과 고통은 정태적이다. 상승하고자 하는 동력은 (절망과 고통에서보다는) 희망과 긍지에서 나온다. 인간들로 하여금 반항하게 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보다 나은 것들에 대한 희구이다.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창안되었다. 대답은 투덜대거나 제스츄어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은 반드시 말로 해야 한다. 사회적 정체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없는 데에서 비롯된다.


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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