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오래 전에 보고, 그의 책을 본건 처음이었다.
제목을 직접 뽑았을지, 아니면 편집자의 솜씨인지는 모르겠으나,
첫 시집 못지 않게 마음을 끄는 제목을 가진 그의 전작 <시대의 우울>도 오래도록 내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올라있었고.
알라딘 서평에서 이 책에 후한 점수를 준 이들처럼, 나도 최영미의 이 신작에 손에 갔던 것은 절반쯤은 매력적인 제목 탓이었을 거다.

화장실에서나, 지하철에서나 잠자리에서나 편안히 펼쳐들 수 있는 짧은 수필 모음집이었고, 워낙 문장이 매끄러워 책은 쉽게 잘 넘어갔다, 책을 읽는 내내 껄끄러웠던 마음과는 다르게.

다 읽고 난 느낌은, 읽는 동안 내내 서걱거렸던 마음 그대로다. 일년에 며칠 쯤은 '나에게 주는 선물'로서의 여행이 가능한 비혼 여성들의 감수성으로 보면 이 책이 어떨까 궁금하지만. 책 자체의 완성도는 우선 기대이하다.
여행기로서 정보제공에 친절하지도 않는데, 여행담을 통해 들려주고픈 저자의 농익은 사유의 정수가 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여행지에서 보낸 시간을 묘사한 많은 양의 문장들은, 저자가 마음에 들었던 이름조차 인용하기 힘든 유럽이나 미국의 토속음식 설명에 할애되거나 호텔의 질에 따라 감정의 고저를 오르내린 잡문(雜文)이기 때문이다.

2부, 예술가의 초상은 심하게 말하면 좀 사기당한 기분이다. 2009년에 펴낸 책에 편집된 저자의 예술평론들은 상당수가 십여년 전 글들이다. 90년대 중반의 <꽃잎>과 <일포스티노> 영화평들은 도대체 뭐란 말이냐.
아마도 그 때 출간되던 <사회평론 길>의 고정필진이었을 최영미의 감수성은 15년 전의 것이다. 물론, 최영미 저자가 이 책의 출간의의를 그동안 여러 지면에 썼던 투고를 한 권에 묶는데에도 크게 부여했다면 할 말은 없지만. 2부의 감수성과 1부의 빠다냄새 많이 풍기는 정서와는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처음 읽은 최영미의 산문, 후일담 문학의 포문을 열어젖혀던 작가인지라 내가 과도한 기대를 편견을 갖고 걸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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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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